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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에 대한 증거(2)/존맥아더

고전15장5-11절 부활에 대한 증거(2)

 

 

 

서론

 

 

최근의 신학자 에반스(C. F. Evans)는 부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기독교 - 적어도 신약의 기독교 - 는 무엇보다 부활의 종교이다"라고 하였다(Resurredion and the New Testament, Naperville: Allenson, 1920, p 1).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 죤 로크(John Locke)는 말하기를, "우리 구세주의 부활은 기독교에 있어서 정말 대단히 중요하다. 그분이 메시야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거기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A Second Vindication of tbe Reasonableness of Cbristianity, lled., London, 1821, vol. 7, pp. 339-42).

 

 

이 두 가지 진술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두 가지 요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기독교는 부활에 기초해 있다는 것과,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시며 주님이시라는 사실 또한 부활에 기초해 잇다는 점이다. 부활은 기독교 진리의 초석이며, 또한 모든 인간 영혼의 운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1. 죽음과 내세에 대한 현대인의 호기심

 

 

1) 논제(論題)

Psycblogy Today 지(誌) 1976년도 9월호에서는(p. 44) "죽음은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죽음이란 이제 우리가 화제로 삼을 수 있는 논제이며, 또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2) 연구의 주제

현재 일부 고등학교와 대학들은 죽음과 내세에 대한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3) 일반적 관심사

최근의 갤럽 여론 조사의 보고에 의하면 미국 사람들 가운데 73%가 내세를 확실히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은 모두 다 죽음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다. 내세를 확인하지 못하는 27%의 사람들도 내세에 대하여 생각한 경험은 많다. 조사에 의하면, 실제로 대부분의 십대들은 5분마다 한 번씩 죽음에 대하여 생각한다고 한다.

 

 

 

2. 죽음과 내세에 관한 잡다한 개념들

 

 

1) 영혼이 잠든다(soul sleep)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죽을 때, 그 영혼이 잠시 동안 잠든다고 가르친다. 그런 다음, 그 사람은 열반(涅槃) 또는 극락(極樂) 세계 안에서 깨어난다는 것이다.

 

 

2) 종국(終局:termination)

이 견해는 사람이 죽으면 티끌로 돌아가며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이다. 즉, 소멸한다는 것이다.

 

 

3) 재화신(再化身:reincarnation)

나는 이 견해를 "환생"(幻生)이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이것은 사람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부터 다른 무엇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4) 흡수의 철학(the philosophy of absorption)

이것은 고린도 교회 주변의 헬라인들이 주장했던 견해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모든 사람 속에는 신성(神性)의 불꽃이 거하고 있으며, 사람이 죽으면 이 불꽃은 큰 불, 또는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죽으면 그는 신적인 정신에게로 돌아가 흡수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힌두교도들과 불교도들이 믿는 것이다. 사람이 일단 신적인 정신으로 돌아가 흡수되어 버리면, 결국은 그는 인간성과 개체성을 잃게 되며, 따라서 그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그들은 믿는다. 그들은 개중에 운이 좋은 사람이 있다면, 후에 무엇인가 다른 것으로 환생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흡수, 재화신(再化身), 그리고 소멸의 모든 견해들에는 자아의 상실과 인간성의 소멸이라는 사실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명백히 가르치고 있다. 인간의 영혼은 영원하며, 또한 인간의 몸은 불멸하는 몸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는 독특한 개체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놀라운 변화들이 다소 일어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영원히 우리 자신으로 계속 존재할 것이다.

 

 

 

 

복습

 

 

1. 고린도 교회의 문제

고린도에 사는 헬라인들은 흡수론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그들의 철학은 고린도 교회를 잠식(蠶食)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얼마 후에 고린도 교회 안에는 육체적 부활을 부인하는 일단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겼다. 그들은 영혼의 불멸은 믿었지만, 육체의 불멸은 믿지 않았다.

 

 

2. 고린도전서 15장을 기록한 목적

바울이 15장을 기록한 목적은 영혼의 불멸뿐만 아니라 영광스러운 몸의 불멸도 믿어야 하며, 또한 사람은 단지 부활 생명에 의하여 놀랍게 변화할 뿐, 영원히 동일한 사람으로 계속 남아 있게 된다는 사실을 고린도인들로 하여금 확신케 하기 위함이었다.

 

 

1) 바울의 멧세지

고린도전서 IS장의 멧세지는 영혼의 불멸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몸의 불멸이다. 헬라인들은 몸의, 육체의, 문자 그대로의 부활을 부인하였으며, 교회는 그것에 대하여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울은 그것에 대하여 대답하고 있다.

 

 

2) 바울의 방법

바울은 11절까지에서 이렇게 말함으로써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보라 ! 우리는 이미 예수께서 무덤에서 문자 그대로, 육체적으로, 육신적으로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고 있다. 이것이 복음이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있다. 그런데 너희가 너희 자신의 부활을 믿는 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바울의 주장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면, 그분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이며, 따라서 우리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3. 바울의 주장의 전제

바울은 고린도인들이 육체적인 부활을 받아들이기를 원했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일반적인 기초, 즉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으며, 또한 이것을 그들 자신의 부활을 주장하는 전제로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받아들인다면, 그들 자신이 육체적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을 왜 믿지 못하는가 라는 것이다.

 

 

이제 1-11절에서,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상기시키고 있으며, 부활의 타당성을 증거함으로써 부활에 대한 주장을 강화하며, 또한 예수께서 실제 육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문자 그대로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에 대한 다섯 가지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교회의 증거(1-2절)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입증하기 위하여 고린도 교회에 제시하고 있는 첫번째 증거는 그들 자신이 교회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지 20년이 지난 당시, 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있으며, 그 부활에 의하여 구원을 얻었으며, 그 위에 서 있으며, 그리고 그것을 붙들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바로 그들 자체가 산 증거였다. 즉, 그들은 부활의 공동체였다. 그들이 첫번째 증거였다. 사실, 모든 역사를 통하여 줄곧 교회가 존재해 왔다는 것은 부활의 복음이 참되다는 증거이다. 다른 것은 제치고라도 교회 하나만을 보라. 이 모든 것이 속임수로부터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밖에는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없다.

 

 

 

 

성경의 증거(3-4절)

 

 

1. 구약성경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고함

- 모든 인류를 위한 부활이 예고됨(시 49:15/ 73:24/ 사 26:19/ 단 12:2).

- 메시야의 부활이 예고됨(시16:10/ 호 6:2 등).

 

 

2. 신약성경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고함

 

1) 예수님 자신의 예고

 

1) 마가복음 2장 18-20절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자기가 "빼앗긴 후"에 그들이 금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헬라 원전상 "빼앗긴다"라는 말은 구약성경 이사야 53장 8절의 헬라어 번역(70인역)에 사용된 말과 똑같다. 이사야 53장 8절은 그리스도가 도살장으로 끌려간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초기부터 자신이 죽으실 것을 예고하셨다.

 

2) 마가복음 8장 31절

여기서 예수께서는 "인자가...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가르치셨다(막 9:9, 31 참조).

 

예수께서는 공생애 초기부터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가르치기 시작하셨는데, 이것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이 자신의 전(全) 사역의 본질이기 때문이었다.

 

 

2) 사도들의 설교

교회가 태동할 무렵 맨 처음 행해진 설교는 부활에 대한 것이었다(행2:22-36/ 3:13-15). 사도행전 1장 22절을 보면, 열 한 명의 사도들이 가룟 유다의 자리를 보충할 사람을 선택하려고 했을 때, 그 자격 중 하나는 그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자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3. 하나님 나라의 계획에 예정된 사항

예수님 자신이 생각하신 것처럼, 구약성경의 예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그리고 신약의 서신과 관련하여 생각할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사명은 왕국(하나님 나라)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 일을 행하시기 위하여 그분은 사셔야만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왕국의 백성들을 얻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죄의 대가를 지불하셔야 했다. 즉, 그분은 죽으셔야 했다. 이렇게 그분은 죽으셔야 하기도 했고, 또한 사셔야 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분이 이 둘 사이에서 살아나셔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부활은 복음의 중간적 위치에 있다. 그분은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 죽으셔야 했지만, 또한 왕국을 세우기 위해 사셔야 했다. 그래서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야 했던 것이다.

 

구약성경은 메시야의 죽으심을 거듭 예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왕이 오셔서 자기 왕국을 세우시고 다스리실 것 또한 예고하고 있다. 만일 성경이 메시야가 죽으실 것과 또한 그분이 다스리실 것을 말하고 있다면 그 중간에 부활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목격자들의 증거(5-7절)

 

 

1. 증언

목격자들의 증언은 좋은 증거이다. 오늘날과 그리고 전 역사를 통하여 인간의 법정은 가능한 한 언제든지 목격자들의 말을 근거로 하여 판결을 내린다. 특히 목격자들이 진정한 성실성, 지성을 갖춘 유능하고 건전한 사람일 때, 이들의 말은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에 호소하고 있으며,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서 실제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들이 만일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부활에 대하여 의심한다면, 그분을 본 500명 이상의 사람들에 대하여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얼마나 확실한가?

 

 

에드워드 클라크(Edward Clarke) 경이라는 한 법률가는 이렇게 말했다.

 

"법률가로서 나는 오랫동안 처음 부활절의 사건들에 대한 증거들을 연구해 왔다. 내가 보기에 그 증거는 확실하며, 고등법원에서 있었던 많은 재판 때에도 이처럼 강력한 증거는 거의 찾아보지 못했다. 증거에 대해서는 추론(推論)이 뒤따르게 되는데, 믿을 만한 증언은 언제나 꾸밈이 없으며 결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부활에 대한 복음서의 증거는 그와 같다. 법률가로서 나는 그 증거를 자신들이 입증할 수 있는 사실들에 대한 진실한 사람들의 증거로서 거리낌없이 받아들인다"(John R. W. Stott, Batic Cbristia-anity,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g 1971, p. 47에서 인용).

 

 

세 권으로 된 저 유명한 「로마사」(History of Rome)의 저자이고, 또한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의 현대사 교수인 토마스 아놀드(Thomas Arnold)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주님의 생애와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증거는 만족할 만하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자주 그렇게 인정되어 왔다. 좋은 증거와 나쁜 증거는 일반 법칙에 따라 구별하게된다. 모든 판단들이 가장 중요한 한 대의(大義)로 집약될 수 있도록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증거들을 하나씩 하나씩 주의깊게 검토해 왔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만족하기 위하여, 여러 번 거듭하여 그것을 검토하였다. 여러 해 동안 다른 시대의 역사들을 연구하며, 또한 그 역사들에 대하여 기록한 사람들의 증거를 조사하고 검토해 본 결과, 나는 인류 역사상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으며,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그 큰 증거보다 더 훌륭하고 충분한 증거에 의해 입증되는 어떤 사실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Sermons on the Christian Life-Its Ho-pes, Its Fears, and Its Close 6th edition, London, 1859, p. 324).

 

 

신학자인 찰스 핫지(Charles Hedge)는 부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것은 고대 역사에 있어서 가장 잘 입증된 사건이다"라고 했다. 왜 그러한가? 무수한 목격자들의 증거 때문이다.

 

 

 

2. 현현(顯現)

5절에 보면 "... 보이시고..."라고 했는데, 이는 직역하면 "... 나타나시고 ..."이다. 부활하신 후 예수께서 자신을 나타내셨을 때까지는 아무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1) 막달라 마리아

마리아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동산에서 그분을 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분이 예수이신 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께서 자신을 마리아에게 나타내셨을 때까지 그녀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았다(요 20:14-16).

 

 

2)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두 제자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그분과 함께 엠마오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알았던가? 예수께서 자신을 그들에게 나타내실 때까지 그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다(눅 24:13-31).

 

 

3) 고기를 잡고 있었던 사도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몇몇 사도들이 고기를 잡고 있었을 때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에 나타나셨다. 그들은 그분을 보았으며, 심지어 그분과 이야기까지 하였지만, 예수께서 자신을 그들에게 나타내시기까지 그들은 그분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그분 스스로 자신을 나타내실 때까지 아무도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아보지 못하였다. 이곳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서 바울은 예수님의 이러한 자기 계시들을 연대순으로 열거하고 있다.

 

 

 

3. 목격자들

 

 

1) "게바"

"게바"라는 말은 반석이라는 뜻의 아람어이다. 반석이라는 뜻의 헬라어는 베드로이다. 따라서 게바는 베드로를 가리키는 또 하나의 이름이다. 베드로는 사도들 중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제일 처음 본 목격자였다. "왜 예수께서는 자신을 부인했던 사도인 베드로에게 처음으로 가셨는가?"라고 당신은 물을 것이다. "왜 그분은 절친하고 사랑하는, 또한 충성되고 훌륭한 요한이나 또는 다른 제자 중 하나에게로 가지 않으셨나?" 정확한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약간의 추측을 할 수는 있다.

 

 

-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용서를 강조하고자하셨다.

 

 

- 예수께서는 전략상 중요한 사역을 위하여 베드로를 필요로 하셨다. 그분은 곧은 막대기 뿐만 아니라 굽은 막대기도 사용하실 수있기 때문에, 곧바로 베드로에게 가신 것이다.

 

 

- 그리스도를 부인한 후, 베드로는 밖에 나가 상한 심령으로 통곡하였다.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하였으며, 또한 결코 그 일을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에게로 가서 그를 만나신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베드로를 지목한 것은 그가 열 두사도 중의 의심할 바 없는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첫 12장까지를 보면 그는 모든 사도들 가운데 가장 큰 사역을 감당하였으며, 가장 큰 신뢰와 신임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 가장 큰 능력과 영향력을 끼쳤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의 첫번째 증인으로 베드로를 선정하면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었다. 그는 그분을 보았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열 두 제자"

유다가 배신한 후, 사도는 열 한 명이 되었지만, "열 두" 사도라는 말은 이미 그들의 공식 칭호가 되어 있었다. 부활하신 후, 예수께서는 다락방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눅 24:33-43 /요 20:19, 26-29). 이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교회를 탄생시킨 신학을 기록한 사도들이다. 사도행전 2장 42절 이후부터 계속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연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분명하게 말한 자들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수사도(首使徒)인 베드로와 다른 모든 사도들이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증거이다! 이들은 지성을 갖춘, 자격이 있는 증인들이다.

 

 

3) "오백 여 형제에게 일시에"

부활은 증인들의 성격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증인들의 수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바울은 그 성격이 완벽하고 의심할 여지없는 베드로와 그 외의 사도들을 열거할 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일시에 본 오백 여 명의 무리도 열거하고 있다. 그는 증인들의 질(質)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증인들의 양(量)도 말하고 있다.

 

 

이 일은 어디서 일어났는가? 어떤 사람들은, 그 일이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다고 믿는데, 그 이유는 이곳이 교회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1장 15절을 보면, 교회가 탄생될 때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인 자들은 단지 120명 가량의 제자들 뿐이었다. 마태복음 26장 32절과 28장 10절을 통해서 볼 때 예수께서 가장 큰 무리의 사람들을 맞이하신 일은 아마도 갈릴리의 한 언덕에서 있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이 나타나신 일이 어디에서 일어났든지 오백 여 명이라는 증인들은 상당히 많은 수이다. 어떤 법정에서 오백 명의 증인이 모두 똑같은 사실을 말한다면, 그것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증거일 것이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어떤 일은 두세 증인의 말에 의해 확증되었다(신19:15).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신다. 바울은 이러한 증인들의 대부분이 아직 살아 있으므로 고린도의 어떤 회의론자라도 스스로 그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고 부언한다.

 

 

4) "야고보"

이 사람이 사도들 중에서 이 이름을 가진 두 사람(알패오의 아들이나 세베대의 아들) 중의 어느 하나를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다. 바울은 우리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를 가리키고 있다. 그는 야고보서를 기록하였으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즉,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로서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다.

 

 

"그런데, 그의 증거가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라고 당신은 물을 것이다. 야고보는 또 다른 종류의 증인이다. 요한복음 7장 5절에 의하면, 예수의 형제들 중에는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다. 야고보는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가에 대하여 예수님 자신이 주장하신 바를 믿지 않았다.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야고보는 그 죽음의 자초지종을 알고 나서 다소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며, 또한 감탄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부활하신 모습으로 야고보를 찾아 그에게 나타나셨을 때, 야고보는 믿었던 것이다!

 

 

바로 예수님 자신의 가족 중에서 믿지 않던 자가 믿었으며 완전히 변하였다. 야고보서 1장 1절에서 그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는 말로 자신의 편지를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자에게 있어서 엄청난 변화이다 ! 이렇게 바울은 질적으로 우수한 사람들의 증거와, 양적으로 많은 무리의 증거와, 그리고 예수님 자신의 가족 중의 한 회의론자 - 믿지 않다가 부활로 인하여 믿는 자가 된 - 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 다른 모든 것들은 그를 확신시키는 데 실패하였으나 부활은 그에게 확신을 가져다 주었다.

 

 

5) "모든 사도"

사도행전 1장 3절에 말씀하기를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사도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하였다.

 

 

앤더슨(J. N. D. Anderson)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증거를 기각해 버리는 가장 철저한 방법은, 이 이야기들은 날조(捏造) 된 것들일 뿐이며 순전히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오늘날 단 한 사람의 비평가도 그러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그러한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오백 명 이상이라는 증인들의 수를 생각해 보라. 그 증인들의 인격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세상이 이제까지 알고 있는 최고의 윤리적 교훈을 세상에 주었으며, 또한 그들의 원수들조차도 그들이 그러한 삶을 살았다고 증거하는 자들이다. 다락방 속에서 패배감에 젖어 위축되어 있던 일단의 겁장이들이 그로부터 며칠 후에는 어떠한 핍박에도 굴하지 않는 담대한 무리로 변하였다. 이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확신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에 유포시키려고 했던 보잘것 없는 날조 사실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불합리하다는 것을 생각하라. 그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다"("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Cbristianity Today, Match 29, 1968, pp. 5-6).

 

 

이렇게 증거는 찾으면 찾을수록 늘어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부활은 교회에 의하여, 성경에 의하여 그리고 목격자들에 의하여 입증되는 것이다.

 

 

 

특별한 증인의 증거(8-10절)

 

 

1. "맨 나중에 ... 내게도 보이셨느니라"(8 상반절)

 

 

1) 누가?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매우 추종하는, 질적으로 우수한 사람이나 오백명의 믿는 형제, 또는 예수님 자신의 형제도 아니다. 이 사람은 그리스도인을 살해하던 자이다 ! 여기 전적으로 믿지 아니하며 교회를 핍박하는 자가 있는데, 그가 바로 바울이다.

 

 

2) 언제?

바울은 자신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맨 마지막으로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 때문에 나는 소위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무수한 체험들을 의심한다.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벧전 1:8)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3) 어디에서 ?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다. 갑자기 그는 땅에 엎드러졌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빛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그의 앞에 나타나셨다. 바울은 그분을 보았는데 그분의 광채로 인하여 그는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2. "...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8 하반절)

 

 

1) 직역

헬라어 토 에크트로마티(t ektr mati)는 에크트로마(ektr ma)에서 파생된 말로서, 유산된 태아, 유산, 조산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2) 추정 가능한 의미

(1) 조산(早産)

헬라어의 문자적인 의미로는 바울이 너무 일찍 태어났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는 열 두 사도들과 관련해 볼 때에도 역시 너무 늦게 태어났다!

 

 

(2) 때 아닌 출생

문자적으로 헬라어는 때 아닌 출생으로 이른, 또는 늦은 출생을 의미할 수 있다. 아마도 바울은 단순히 자신이 잘못된 시간에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는 것같다. 이것은 사실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견해의 문제점은 이 말이 이러한 의미로 사용된 다른 예가 없다는 것이다.

 

 

(3) 죽은 태아

어떤 주석가들은, 바울이 자신을 단지 가장 나쁘고, 가장 추하며, 가장 멸시받으며 결국은 폐기되는 존재로 생각하여 죽은 태아로 지칭하고 있다고 말한다.

 

 

(4) 낙태아

에크트로마티( ktr mati)에 정관사 토(t )가 사용되었으므로 이 말은 "그 낙태아"로 직역할 수 있다. 이는 조롱과 악의와 증오의 말이었기 때문에, 바울을 가리켜 "그 낙태아"라고 부른 사람들이 있었을는지도 모른다고 어떤 주석가들은 말한다. 사실 바울이 전한 은혜의 복음이 자신들의 율법의 체계와 반대된다고 하여 바울을 증오한 사람이 많았었다. 정관사가 있으므로, 바울은 "나는 그 낙태아인 바울이다. 멸시받고, 쓸모 없고, 추하고, 죽은, 혐오할 만하고 무가치한 살덩이이면, 교회를 핍박하던 자이다. 그런 나에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차별 대우하시는 분이 아님을 말해 준다.

 

 

 

3.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9절)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핍박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가 일생동안 마음 속으로 잊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당신은 상상할수 있는가? 그들은 모두가 그의 형제와 자매들인데, 그는 그들을 죽였던 것이다!

 

 

 

4. "그러나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10 상반절)

우리가 현재의 우리로 된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만일 당신이 구원을 얻었다면, 그것은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것은 주권적인 것이며 공로없이 된 것이다. 바울은 "나는 단지 그리스도인을 죽이기 위하여 가고 있었는데, 그 다음 내가 아는 일은, 예수께서 오셔서 내게 나타나셨으며, 나를 변화시키시고, 나를 사도로 만드셨다. 나는 그분이 그러한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믿을 수없다. 나는 세상의 찌꺼기였다 !"라고 말한다.

 

 

 

5.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10 상반절)

바울은 단순히 구원을 받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아 영적인 존재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헛되지 않은지를 당신은 가끔씩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부분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6.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10 하반절)

 

 

바울은 여기서 다른 사도들보다 자신이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수고한다"는 헬라어 코피아오(Kopia )는 기운이 모두 고갈될 때까지 일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께서 다른 어느 누구에게 주셨던 것보다 더 풍성한 결실을 나에게 주셨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수고를 격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서의 풍성한 응답에 차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인 살해자」를, 어떤 방법으로 「이제까지 살았던 이들 중 가장 위대한 사도」로 변화시키겠는가? 교회를 멸절시키기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하던 자를 어떤 방법으로 이제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교회의 옹호자로 만들겠는가? 이러한 일이 일어날수 있었던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본 것이었다 !

 

 

 

 

공통적인 멧세지의 증거(11절)

 

11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우리는 모두 다 동일한 멧세지를 전하고 있으며 동일한 복음을 믿고 있는데, 그것은 부활의 복음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이나 베드로나 열 두 사도나 야고보나, 그들은 모두 똑같은 멧세지를 전파하고 있었다. 또한 고린도에서 전파되었든지, 아니면 에베소나 골로새나 그 밖의 다른 곳에서 전파되었든지, 그 전파된 멧세지는 항상 동일한 것이었다. 부활에 대한 가장 큰 증거 중 하나는 초대 교회의 신앙의 일반적 단일성과 일치성이다.

 

 

 

복음의 세 가지 커다란 함축적 의미

 

 

고린도전서 15장 8-10절에서 바울은 모든 사람에 대한 복음의 커다란 함축적 의미 세 가지를 끌어내고 있다. 어떤 사람이 부활의 복음을 들을 때, 거기에는 이 세 가지가 필요하다.

 

 

1) 죄에 대한 인식(8-9절)

바울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다. 그는 자기 자신을 죽은 태아,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사도가 되기에 부적합한 자, 교회를 핍박했던 자로 언급하였다.

 

 

2) 인격의 변혁(10 상반절)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바울은 놀랄 정도로 일변하였다. "... 헛되지 아니하여"라는 말은 그가 변화된 삶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였음을 보여 준다.

 

 

3) 힘의 방향에 대한 재조정(10 하반절)

"...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자기 존재를 하나도 남김없이 하나님의 일에 바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