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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표출된 다양한 감정/조나단 에드워즈

 

마13장20절 표출된 다양한 감정

 

 

 

 

모든 종류의 영적 감정에는 모방된 거짓 감정이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흉내내는지를 보았지만, 다른 영적 감정들을 흉내낸 예들도 많다.

 

 

사울 왕은 죄에 대한 거짓 애통함을 보였다(삼상15:24-25, 26:21). 사마리아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거짓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왕하17:32-33). 시리아의 나아만 장군은 기적적으로 자신의 문둥병을 치료받고도 거짓 감사를 드렸다(왕하5:15).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돌밭을 거짓된 영적 기쁨을 가진 자들로 비유하셨다(마13:20). 회심하기 전의 하나님을 향한 바울의 열심은 진정한 영적 열심히 아니라 잘못된 거짓 열심이었다(갈1:14, 빌3:6). 회심 후, 바울은 많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이 거짓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롬10:2). 많은 바리새인들 또한 영생에 대한 거짓 소망을 품고 있었다(눅18:9-14, 요5:29-40)

 

 

결론적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진정한 영적 감정들과 비슷한 많은 종류의 가짜, 즉 거짓 감정들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많은 감정들을 한꺼번에 동시에 가지지 못할 이유도 없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모시고 예루살렘에 간 무리에게는 많은 믿음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 왔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향한 찬양과 사랑이 가득했다. 그들은 예수님께 깊은 존경심을 보였으며 그가 지나가는 길에 옷을 벗어 깔기도 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신 일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아주 고대하고 있었으며 예수님이 곧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찬양함에 있어서 큰 기쁨과 열심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데도 열심을 다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라! 그들 중에 과연 몇 명이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였는가?

 

 

한 사람에게 동시에 여러 감정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신비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 강한 감정이 일어날 때 그 감정이 또 다른 감정들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 첫 번째 감정이 사랑이면 더욱더 그렇다. 내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랑은 모든 감정들 중에 으뜸이며, 소위 다른 감정들의 샘이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지옥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사람을 생각해 보자. 사탄이 몰래 다가가서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셨다고 믿게끔 속인다. 사탄이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고 두 팔을 벌린 사람의 환상을 통해서 그를 속인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이것이 그리스도의 모습이라고 믿는다. 또는 '아들아, 너의 죄는 용서받았다"라는 소리를 들려주어 그것이 하나님의 목소리라고 믿게 해서 그를 속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죄인은 복음에 대한 아무 영적인 이해 없이도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믿게 된다.

 

 

얼마나 다양한 감정들이 이 죄인의 마음속에 일어나겠는가? 그는 자신을 지옥으로부터 구해주었다고 생각하는 그 상상의 구세주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또한 그 상상의 구원에 대한 감사로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기쁨으로 넘쳐 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안달할 것이다. 자신의 상상의 하나님 앞에서 겸허하게 변하는 것은 아주 쉬울 것이다. 그 뜨거운 감정들이 식기 전까지는 그는 자신을 부인하고 그 상상의 종교를 열심히 전할 것이다.

 

 

이런 모든 영적 감정들은 이런 식으로 한꺼번에 유발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묘사한 이런 감정들을 경험하는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지 않은가? 그의 감정들은 그 자신의 마음속에서 솟아난 것이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일어난 것들이 아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의심하는 사람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짧은 것이다.

 

 

출처: 지명교회까페

 

출처 : 지명교회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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