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흥분된 감정/조나단 에드워드
마12장34절 흥분된 감정
영적인 것에 대해 쉽게 흥분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를 자랑하는 위선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에, 쉽게 영적인 것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 입을 여신 거야! 원래 말이 어눌한 사람인데 저렇게 거침없이 술술 말하잖아. 그는 자신의 마음을 열고 은혜 받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거야." 특히 종교적인 말이 조금 흥분되고 진지해 보일 경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분명한 회심의 표시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회심의 표시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룩한 성경 말씀을 그들의 인도자로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믿는 자들이다.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영적 수다가 거듭남의 표시라고 증거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단지 성경이 나무의 무성한 잎사귀에 비유한 종교적 언어에 불과할 수 있다. 그 어떤 나무도 잎사귀가 없어서는 안 되겠지만 잎사귀만으로는 그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알 수 없다.
영적인 것들에 대해서 자진해서 쾌히 이야기한다는 것은 선한 동기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동기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즉 그 사람의 마음이 거룩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 마12:34), 그 사람의 마음이 거룩하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강한 감정 때문에 자신들이 가장 영향을 받았던 것들에 대해 쉽게 거침없이 말하기 마련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실제로 진지하면서도 흥분을 자아내는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영적인 것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좋은 쪽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기독교에 대하여 감동을 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보여 주었듯이 종교적인 흥분은 진정한 구원의 체험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은혜받은 일이나 체험에 대해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옆에 누가 있든지 상관하지 않고 흥분하여 얘기한다. 이것은 결코 좋지 못하다. 잎만 무성한 나무는 대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법이다. 강한 거짓 감정들이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면 진정한 감정보다 입 밖으로 먼저 튀어나오기 마련인 것이다. 바리새인들처럼, 겉으로 드러내기 좋아하는 것이 거짓 믿음의 본질이 아닌가?
출처: 지명교회까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