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부흥하는 원동력. 행6:1-15/ 박종열 목사
부흥하는 원동력, 행6:1-15/ 박종열 목사
들어가는말
계속해서 사도행전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시간에는 사도행전5장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지난시간에 교회가 부흥하는 원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회가 부흥하기 위하여서 첫번째로 가식적인 것을 버려야 합니다. 두 번재로 복음전하는 데에 온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교회가 부흥을 합니다. 한주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전하는데 마음을 다하려고 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교회에 은혜를 덧입혀 주시기를 원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교회안에 구성원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교회안에 구성원들이 영적으로 건강할때에 모든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덧입혀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또한 이 귀한 교회 가운데 복을 더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역시 교회가 부흥하기 위한 원리에 대해서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본문강해
행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1절에 보시면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 졌는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 입니까? 바로 전장에 보시면 사도들이 복음전하는데에 마음을 다했던 때를 말합니다. 그렇게 복음전하는데 모든 것을 다 하였을 때 그때를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과 전도하는 것을 쉬지 아니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전도하는 것을 쉬지 아니할때에 영적인 열매를 거두어 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축복이 있어야할 것입니다.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뿌리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쉬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기도 부탁도 하고요. 그렇게 열심히 뿌릴때에 거두도록 하시는 것이 자연법칙이지요. 성경에 보면 자연 법칙이 하나님의 법칙인 영적인 법칙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알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서 교회가 부흥하는 데에 있어서 넘어야할 여러 가지 부분들이 있는데 첫 번째는 분쟁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첫 번째 대지 교회가 진정으로 부흥하기 위하여서 분쟁을 다스릴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공동체가 바로 서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서로 싸우거나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이나 학교나 그리고 직장이나 국가 모두에서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부분도 일반적인 부분이지만 하나님의 교회에게도 필요한 부분인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공동체가 갑자기 부흥을 하였습니다. 그때에 교회안에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도 있었고 그리고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과부가 있었는데요. 그런데 헬라파는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었고, 히브리파는 교회안에 오래동안 머물러 있었던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은 도움을 받는데에 있어서 히브리파 과부들의 비해서 소홀하게 대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그안에서 원망하는 자들이 생겼습니다. 균등하게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원망하는 소리들이 있었습니다. 시험에 드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리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공정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었겠지요. 이렇게 원망하는 소리들이 있었을때에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은 분쟁을 다스립니다. 사람을 세우는 것으로 분쟁을 다스립니다. 지혜롭게 일처리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안에서든지 가정에서든지 분쟁은 언제나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분쟁이나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스리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원망하고 서로 분쟁하는 일들이 일어났을때에 그일들을 지혜롭게 잘 처리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그 교회 공동체 안에 있었고, 그일들을 지혜롭게 잘 처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지속적으로 부흥하고 복음의 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날 교회들 가운데 목회자와 장로가 각을 세우고, 원로 목사와 담임 목사가 사이가 좋지 않아 신경전을 벌이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둘로 나뉘이고, 주변에 좋은 본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교회안에 분쟁이 생겨서 서로 분열하고 나누이도록 하는 것은 악한 마귀가 교회가 서지 못하도록 하는 술책이라고 여겨집니다. 사단은 일부러 그런 악한 것들을 교회안에 심어 놓습니다. 세상 정신을 심어놓아서 교회가 그렇게 세상정신을 좇아가면서 세상에서 하는일들을 그대로 따라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회안에 어떤 질서나 법이 통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러한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를 허수아비로 알도록 하고 권위에 대해서 도전하도록 하고 말씀이 명령하는 것을 우습게 여기도록 하여서 결국에는 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쟁을 다스리지 못하면 교회는 거기에서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보편적으로 거룩한 질서가 있어요. 그런 교회는 강력한 리더쉽이 그안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째 대지. 교회가 부흥하는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본질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부흥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교회의 사명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행6: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은 교회는 교회로서의 본질적인 사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교회는 예배하는 데에 집중해야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데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이것이 교회에게 있어서 가장 집중해야할 사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서 그리고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나 이러한 원리들에 대해서 조금씩 소홀해 지기 시작합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가 소외된 이웃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가 노인 사역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학교를 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안교육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교회가 여러 가지 사업들을 하면서 마땅히 감당해야할 본질적인 것들에서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일들에 바빠지면서 교회가 때로는 공연장이 되기도 하고, 교회가 공익사업을 주관하는 단체가 되기도 합니다. 교회가 극단이 되기도 하고, 학교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서 교회는 점차로 예배하는 것과 복음 전하는 일에서 이탈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좌우가 바뀌어 버린 경우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할 것입니다. 이렇게 비중있는 사역이 바뀌어 지는 경우가 오늘날 교회들 안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가장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바로 분별하거나 집중하지 않아서 주변것들에 가장 소중한 것들을 내어 주고 말아서 일어난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무슨일이 있어도 본질적인 것을 내어주어서는 안됩니다. 처음에 하나둘 양보하기 시작하면 전부다 놓쳐버리는 것이 영적인 전투에서 일어날수 있는 일입니다. 사도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목숨걸고 지켜야 하는줄을 예수님으로부터 바로 교육을 받아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2절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서 연구하는 일을 버리고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고 그들을 교육하고 이러한 일들을 하는 것이 나쁘다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일에 가장 우선순위를 내어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일들을 가장 소중하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저에게도 하나님 말씀 연구하고, 준비하고 그렇게 하는데에 마음을 다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들이 자주 발생을 하는 것 같습니다. 때때로 게을러서, 또한 쉬고 싶어서, 때로는 나중에 해야지 하는 마음 때문에 그런 모습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세 번째 대지. 사람을 세우는 교회였기 때문에 그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었다.
부흥하는 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는 사람을 세워놓은 교회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한 사람안에 있는 가능성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중요하지요? 예루살렘 교회안에서는 좋은 사람들이 교회안에 계속해서 세워졌습니다. 본질적으로는 사도들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사도들처럼 비슷한 사람들 그렇게 좋은 부류의 사람들이 그 교회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교회안에 있었습니까? 3절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는 말씀처럼
사도들이 해야할 일들을 맡길만한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들이 그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에 마음을 다할 수 있도록 그런 일들을 맡아서 감당해줄 그런 일꾼들이 교회안에 있었습니다. 5절에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지식과 상식이 통하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교회안에 구성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그런 흔적들이 보입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목회자가 기도하면서 결정한 사항들에 대해서 쌍심지를 켜고서 반대하고 자신들의 세속적인 주장을 펴는 그런 일들이 오늘날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많은 사람들이 성도들 대다수가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분별할 수 있었던 사람임을 밝혀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성숙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거룩한 교회가 되도록 악한 가라지가 자라는 것들을 제거하신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위선적인 것들을 즐겨하며 마귀가 좋아하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을때에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었을때에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보호하시기 위하여서 그들을 먼저 데려가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교회안에 지도자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소중히 여기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하여서 자신의 것을 버리고 헌신하였을때에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도록 하시고 그러한 귀한 공동체를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들이 교회안에 한두명 수십명 수백명을 불러 모아 주셨다는 사실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작은 무리의 사도들로부터 수많은 무리의 좋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귀한 교회 공동체 안에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은 말씀과 기도에 헌신은 진정한 부흥을 불러 일으킨다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루살렘 교회는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는 교회였습니다.
행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였을때에 다른 것은 하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고 그것을 연구하고 말씀을 읽는 것은 내가 죽어도 빼먹지 않겠다 그런 일들이 일어났을때에 어떤일이 일어났습니까? 예루살렘의 제자의 수가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도에 복종하니라. 이 말씀이 무슨말입니까? 죽었다고 생각하고 말씀에 헌신하였을때에 유대교에 심취해서 예수믿는 자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박해하는 그런 일에 앞장섰던 골수 유대교인들인 제사장들 마져도 복음듣고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카톨릭 신부들 조차도 주님께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믿던 신앙을 다 부인하고 내가 정말 잘못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말씀에 헌신하고 주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그런 헌신이 있을때에 이러한 기적과 같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버릴때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세속적인 것들을 버리는 결단도 우리 삶 가운데에서 있어야할 것입니다. 그러한 헌신과 결단이 있을때에 믿지 못할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무엇인가 헌신하도록 말씀과 기도에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도록 그렇게 우리에게 도전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들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순종하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지명교회 까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