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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파송 그이후, 행8:26-40/ 박종열 목사

아침그림 2016. 7. 5. 19:23

제목: 파송 그이후, 8:26-40/ 박종열 목사

 

1. 들어가는말

 

계속해서 사도행전 8장 말씀 나머지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를 흩어지도록 하셨다는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처음에 교회가 생겨날때에는 절대로 흩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이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숙하고, 부흥도 하고, 안정이 되어지고, 좋은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면 무엇인가 준비가 되었을때에는 하나님께서 섭리적으로 흩어지도록 하십니다. 이러한 것도 아주 신비로운 면들이 있습니다. 몇몇가지 이유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를 많은 지역으로 흩어지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무엇인가에 눌려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흩으셨습니다. 귀신들려 있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진실로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존재 하지 않는 곳에는 진정한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파송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다른 복음에 속고 있기 때문에 또한 파송하셔서 바른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일꾼을 파송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들을 준비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흩어지도록 하시는 데 몇몇가지 목적들이 있으십니다. 앞에서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흩어지도록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잠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왜 흩어지도록 하셨는지? 또 다른 측면에서 몇몇가지 이유들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강해


흩어진 이후에 파송을 받은 이들이 성숙하게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흩어지기 싫어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흩어지고 싶지 않아 합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라고 합니다. 정말 정말 다른 곳으로 가기 싫어 합니다. 정든곳을 그리워하고 또한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우리들의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도전정신이 충만하고 새로운 것을 늘 항상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냥 익숙한 것에 묻혀서 살고 싶고 그냥 하던대로 그냥 내가 알고있는 것만 행하면서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인간의 죄인된 속성입니다. 여러 가지 다른 정보를 알려주는 것도 귀찮아 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하지 않고 또한 알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이대로 살다가 죽게 내 버려두세요.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예수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복음을 듣고 주님께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 주님이 가지신 비전이었음에도 그것에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성도들 역시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예수믿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현 상태를 벗어나서 좀더 주님께로 헌신되어서 진정으로 주님 닮은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끼리만 좋다고 붙어 다니면서 교제했습니다. 물론 성도의 교제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더 큰 헌신은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복음을 전하려고 자신을 헌신하며 사는 이러한 면들이 많이 약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파송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준비된 일꾼들을 흩으시고 좀더 한걸음 나아가서 주님의 시야를 갖추도록 그렇게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흩어져야 하는 원리가 있다는 것이예요. 흩어지지 아니하면 우리는 무엇인가에 붙들려서 우리 자신이 뭔가 대단한 존재인줄 착각하고 살수도 있어요. 우리가 흩어질때에 비로소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우리가 우물안 개구리처럼 무엇인가에 보호만 받고 있을때에는 자기안에 있는 것이 전부인줄 아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우물을 박차고 나아왔을때에 굉장히 더 큰 세상이 있는 줄 그때에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파송받기 전에는 자신이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고는 하지만 무엇인가 전적으로 헌신을 두려워 합니다. 많은 이들이 자기 생각안에 갇혀 있어요. 어떤 부분적인 것들에 그냥 만족하면서 사는 경향이 아주 강해요. 자기 깨어짐이 아주 아주 약해요. 평신도에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교역자나 일꾼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파송되기 전에는 그 안에서 보호를 받지요. 그러나 책임감은 전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수동적인 그런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시키는 것만 하면 됩니다. 안그런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만, 많은 경우가 그러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여기가 좋사오니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이런 반응도 나오는 것입니다. 고인물이 썩듯이 이런 현상이 예수 믿는 공동체 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알고 지내던 사람만 사귀겠어요. 내가 먹어보지 못한 것 안먹을래요. 이러한 사상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안주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이런 분들에게는 주님이 가지고 계신 세계를 향한 비전이 당연히 없지요. 그러나 흩어지고 난 뒤에는 어떻습니까? 그때에서야 무엇인가 심각함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조금은 정신을 차린다는 것이죠. 파송받고 나서도 정신을 못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영적인 면들을 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선교사의 경우에 흩어지고 난뒤에 선교지의 수많은 필요들이 그때서야 보입니다. 도와주어야할 수많은 영혼들이 주변에 많이 있는 것이 보입니다. 무지에 싸여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복음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이 옆에 수없이 많이 있는데 자신이 터무니 없이 준비되지 못했음을 파송받고 난 이후에 비로소 깨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파송되어지고 흩어지고 난 뒤에 바로 앞에 있는 사역이 이제야 자기가 해야할 일이라는 것을 조금 인식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흩어지도록 하셨습니까? 그 지역을 하나님께서 그들의 땅으로 주시려고 흩어지도록 하셨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가지고 있어야할 정체성이 있습니다. 흩어지기 전에 가지고 있던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파송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해서는 곤란합니다.

파송되었습니까? 그렇다면 마음을 열고서 그곳에서 배워야할 것들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파송되었다면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내려놓는 훈련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질때에 그때에 비로소 주님의 비전이 우리안에 자리잡게 됩니다. 교회안에서 직분을 맡을때도 마찬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내 생각 내려놓고 주님 가라 하시는대로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닌다. 그러한 마음을 품을때에 주님이 주시는 복을 누립니다.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자원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십니다. 겸비한 마음을 품을때에 열매도 허락하여 주십니다.

 

파송된 일꾼이 어떻게 쓰임받습니까?

 

파송된 일꾼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쓰임받는지 우리는 살펴볼 수 있습니다.

26절부터 살펴볼 수 있습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자세하게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그길은 광야길이다 라고 하십니다. 빌립은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그대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하였을때에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27절에 에디오피아 사람이며, 에디오피아의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수레에서 무엇인가를 읽고 있었는데 성경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빌립에게 또 말씀하여 주십니다.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 보아라 하십니다. 빌립은 즉각적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이사야의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물었습니다. 읽고 있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까 하고 그렇게 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을때에 소리를 내어서 읽는 전통이 있습니다. 아마도 내시는 이러한 유대인들이 성경을 읽는 그런 방식대로 이사야서를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이사야 말씀중에서 53:7-8절 말씀을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내용은 성경 말씀 중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깊이 설명해 줄 수 있는 연결이 되는 그런 말씀중에 한가지입니다. 그래서 빌립은 이 말씀을 내시가 이해하고 있는지? 바로 알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내시는 대답했습니다.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이것을 깨달을 수 가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이리로 올라와 앉으십시오 라고 하면서 빌립을 수레로 올라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풀어서 설명을 하면 내시는 미래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저에게 지도해 주게 될 사람이 없다는 의미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말씀을 지도해 주는 사람이 자기에게는 없었다는 것이에요. 무엇인가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준비된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앞에 갈급한 마음과 말씀의 깊은 의미를 알고자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진 준비된 사람이었음을 성경은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한 나라의 고급 관리정도 되었다면 대체적으로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다 대부분 권위적이며, 아무하고나 말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대단히 호의적입니다. 체면이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이런 것들에 신경쓰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알고 그것으로 인하여서 영적인 유익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강합니다. 복음의 문제를 해결받고 싶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혼의 자유함을 누리고 싶은 그런 마음 뿐이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 사람이 유대교안에 있으면서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는 그런 구도자였을 것입니다. 복음전도자를 맞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서 좋은 반응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8:32-33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이 말씀은 이사야 53:7절의 내용인데요.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당하심을 미리 예언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셔서 희생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어린양처럼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으시고 잠잠하셨음을 말씀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내시는 34절에 계속해서 무엇인가 질문을 합니다. 예언된 고난의 종이 누구인가요? 공손히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부탁하오니 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고난당하는 종이 선지자를 의미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고난 당하고 있는 이가 이스라엘 민족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자기를 가리침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공손하게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립은 복음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35절에 보시면 이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라고 말합니다. 빌립은 이사야 53장의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수님께서 이미 이땅에 오셔서 죄를 위하여서 하나님의 희생제물이 되셨음을 설명해 줍니다.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이미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서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를 고백하면 구세주와 주님으로 고백하면 생명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런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했을때에 내시는 복음에 건강한 반응으로 화답합니다. 길을 가다가 물을 보고서 그곳에서 세례를 받기를 요청합니다. 38절에 보시면 빌립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냇가에 들어가서 사람의 몸이 완전히 잠기도록 하는 침례를 주었을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자신의 옛 자아가 죽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는 복음의 의미를 실제적으로 자세히 보여주는 침례를 받았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안에서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를 위해서 살겠다는 그런 고백을 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내시는 복음을 고백하고,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살겠다는 거룩한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여준 전도자인 빌립앞에서 그리고 하나님 존전앞에 있는 자기 자신 앞에서 전혀 거리낌이 없이 예수로 인해서 다시 살아난 존재이오니 이제 남은 인생 주님만을 위해서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하면서 에디오 피아 내시는 거룩한 은혜를 누리고 있지요.


성경말씀대로 복음을 바로 이해하고, 성경말씀대로 예수를 바로 믿을때에 누리는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올바로 깨닫고, 이해하게 될 때에, 그리고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서 예수를 믿을때에 은혜를 깊히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빌립을 이끌어 가셨을때에,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이런 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전에 성경을 살펴보면, 내시가 흔연히 길을 가므로 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 단어는 카이로 라고 하는 단어인데, 죄 사함을 받음으로 인해서, 유쾌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죄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는 이들이 이러한 기쁨을 누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기쁨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재미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준비되어서 파송된 이들에게 영적인 필요가 있는 그런 이들을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다는 것은 하나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하게 될 때에 오늘날 우리 역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고, 주님의 거룩한 사역 가운데 부르셨음을 감사와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의 사건을 지엽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어 가시는 과정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는 그런 시야가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3. 마치는말

 

파송 그 이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영적으로 준비되어서 파송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의미가 있음을 기억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머물러 있게 하시기도 하지만 파송하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파송된 곳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섬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출처: 지명교회 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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