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잠언1:1-7절/지혜안에서 거하라. 박종열 목사
잠언1:1-7절/지혜안에서 거하라. 박종열 목사
1.잠언의 배경
1) 잠언이란 무엇인가? 히브리어 성경은 헬라어 역본인 70인역처럼 “솔로몬의 잠언”(1:1)이라고 부른다. 잠언은 솔로몬이 지은 3천수가 넘는 잠언중 가장 중요한 513개를 골라 솔로몬의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다른 잠언들과 하나로 엮은 것이다. “잠언”은 “본받다”라는 뜻으로, 이는 일상의 구체적인 모습과 인생의 심오한 진리들을 비교한 책이다. 잠언은 바늘잠과 말씀언으로 따끔한 경고나 교훈에 해당하는 짧은 말이다. 영어로는 Proverbs 라고 해서 격언이나 비유를 의미한다. 히브리어로는 마솰이라는 말인데 비유라는 의미에 가깝다. 솔로몬의 비유를 통한 말씀이라고 할수 있다. 1:6절은 잠언, 비유, 지혜있는 자의말, 오묘한말을 동의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뭔가 오묘한 지혜가 들어있는 비유가 잠언이다. 신약에서 말씀하신 교훈을 가진 비유들(씨뿌리는 비유, 마13장)과 비슷한 것이다.
2) 잠언의 저자는 누구인가? 대부분 솔로몬에 의하여서 쓰여진 것이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주전970-930년까지 통치하였다. 그는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노래는 일천 다섯을 지은 자이다. 그러나 솔로몬만이 아니라 “지혜있는자”에 의한 잠언도 있다(22:17-24:23, 34). 누구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30:1)도 있고,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훈계한 잠언(31:1)이 있다.
3) 잠언의 목적은 무엇인가? (1:1-6)
지혜를 깨닫고 올바르게 일을 행하기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전체 성경의 목적과도 일치한다. 딤후3:14-17.
2. 잠언의 특징은 무엇인가?
잠언은 지혜문학이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잠언은 실제적이면서도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다. 하나님과 관계가 올바로 정리되어야 올바른 삶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에 따른 도덕적, 윤리적 교훈을 가르친다. 병행법의 광범위한 활용이다. 병행법이란 전하고자 하는 진리를 두가지 이상의 문장으로 병렬배치 하되 둘째 행이 첫행의 내용을 확장 보완하며 강조하거나 규명하고 최종목표인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는 것으로 서로 대조되는 관점을 배열하기도 한다. 잠언을 해석할 때 병행법을 확인하고 종종 저자가 의도하지만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은 내용을 찾아내야 한다. 어떤 비유법이 사용되었는지 확인하고 사실적 문장으로 재서술 해야 한다. 몇마디 말로 잠언의 교훈이나 원리를 요약해야 한다. 가르치고자 하는 행실을 서술해야 한다. 또한 성경에서 사례들을 찾아보아야 한다. 잠언이 율법이나 절대적 약속이 아닌 기본적 원리를 가르치기 때문에 이런 일반적인 원리는 삶의 불확실성과 타락한 인간의 예측하기 어려운 행위 때문에 보통 “예외”가 있다. “잠언은 잠언으로서 취급해야 한다. 잠언은 진리에 관한 모든 것을 진술하지 않고, 진리를 향한 방향 제시를 하는 것이다. 잠언은 만일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전문적으로는 매우 부정확한 경우가 흔히 있게 된다.” 잠언의 말씀은 진리를 세세하고 협의의 용어로 구성하여 이 진리를 전문적인 어떤 것을 표현하기 보다는 광범위한 원리를 지적한다. 매 잠언의 말씀은 다른 것들과 균형이 맞추어져야 하며, 성경의 나머지 부분과 비교해 가며 이해해야 한다. 또한 잠언은 논리적으로 정확한 말이 아니며, 기억하기 쉬운 말이다. 또한 어떤 잠언은 우리 시대 언어로 번안될 필요가 있을수 있음을 알아야할 것이다.
<잠언1:1-7절/지혜안에서 거하라>
1.설교에 개요.
1) 지혜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1-6절)
그리스도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2) 미련함을 경계할수 있어야 한다. (7절)
계속해서 깨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며, 미련함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미련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3) 결론.
지혜안에 거하며, 미련함을 깨뜨릴때에 하나님께 충성할수 있다.
2. 첫 번째 대지, 지혜를 추구하며, 지혜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1-6절)
성도는 그리스도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지혜를 추구해야 합니다. 제가 선택한 짧은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저는 두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혜를 추구해야 한다는것과 또 한가지는 미련한 것에 대해서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가지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핵심 메세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를 추구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지혜를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가 지혜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지혜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며, 그리고 지혜를 추구하는 삶을 사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미련함을 경계하는 것이 또한 지혜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1절.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본문에서 잠언에 저자중에 한 사람이 솔로몬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을 쓴 이 저자는 잠언이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밝힘으로서 그가 하나님께 지혜를 받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냄으로 인하여서 이 말씀의 권위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열왕기상 4:23절에 보면 실제로 솔로몬이 잠언을 3천이나 지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속담들 격언들이라고 번역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1절은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여 주신다고 할수 있습니다. 잠언은 마샬이라고 하는데요. 의미는 경고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파라볼레”라고 하는 단어는 비유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잠언은 “비유를 통한 경고”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언은 비유를 통하여서 깜짝 놀라도록 하나님의 말씀이 비유의 형태로 전달이 되는 책이라고 이해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잠언의 저자는 성경을 읽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잠언의 놀라운 통찰력과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말씀으로 인하여서 경고를 받아 지혜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최고로 지혜로웠던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솔로몬이 가장 미련한 자의 삶을 또한 경험해 보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해 볼때에 오늘날 이 잠언을 읽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놀라운 경계심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여기서 지혜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지혜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인 지혜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련된 지혜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언이라는 이 말씀으로 인하여서 이 말씀을 사랑하고 또 지혜를 추구하며 지혜안에 머물러 있기를 소망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혜와 훈계를 아는 축복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역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그냥 생각없이 교회만 다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안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향하여서 경고할때에 우리의 영혼을 깨우치는 그런 메세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실때에 그 말씀 앞에 무릎 꿇고 배워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늘 항상 배워야만 하는 학생이어야 합니다. 때때로 저는 성경을 보면서 사도바울이 어떻게 처음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서 예수를 믿은 그 감격을 끝까지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런 질문을 해 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 사도를 살펴보았더니 그가 가지고 있었던 감격을 그가 주님 앞에 설때까지 유지할수 있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는 아직도 자신이 무엇인가 잡은 사람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안에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좇아가는 과정 가운데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빌3:13-14).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 역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지혜안에 머물러 있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자신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해야만 합니다. 늘 항상 말씀과 동행하지 아니하면 자신도 모르게 무지몽매함에 빠질수 있는 그런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지혜를 추구하며 지혜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 성경저자는 여러가지 말로서 표현하여 주고 있습니다. 3절과 4절이 바로 그것입니다.
3-4절.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여기서 어리석은자라는 말의 의미는 그마음이 외부를 향해 무방비로 열려있는 단순한 자라고 정의할수 있습니다. 외적 유혹에 속아넘어가는 자를 가리킨다고 할수 있습니다. 단순무식 했던자에게 이해력을 주고 지혜를 줄수 있는 것이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지혜를 추구할 때 얻어지는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매튜핸리는 그의 주석에서 이 지혜로운 말씀은 어떤 용도를 위해서 씌어졌는가? 라고 물으면서 이 잠언들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할 것이지만,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성경을 사랑하며, 또한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며, 지혜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라고 할찌라도 그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지혜로운 마음을 주실수 있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지혜로운 마음을 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처음 신앙을 가졌을때에 우리 마음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순수했고, 가난한 마음을 유지하며 우리가 살았습니까? 저 역시도 처음에 목회자가 되어서 사역을 시작하였을때에 지금보다 많이 순수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때에도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작은 것에 감사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작은것에 감사하며 감격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경력이 쌓이면서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오늘날 우리의 가슴은 주의일에 감사하며 감격하고 있습니까?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주를 향해서 굳어져 있다면 그것이 바로 어리석음으로 가는 병에 걸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사랑하며, 하나님 경외함을 배울때에 우리의 어리석음이 깨뜨려지며, 다시금 지혜로운 마음을 품을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권면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서 미련하고 어리석음을 벗어내야만 합니다. 이러한 메시지에 우리의 마음이 이 시간 열려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5-6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지략은 인도함을 받는다고 합니다. 계획과 좋은 충고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현명한 권고를 얻는다” 라고 해석 할수 있습니다. “수수께끼 같은 말들을 이해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라고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안에 머물러 있는 자들에게 축복이 있습니다. 어떤 축복이 있습니까? 더욱더 지혜로울수 있는 축복을 누릴수 있습니다. 5절에 지혜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더욱더 깊히 깨닫고 놀라운 총명을 얻을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영역에 있어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난다고 볼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열망이 있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지혜자의 메시지를 경고로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에 들을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은혜의 자리에 우리가 서 있다고 여길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메시지가 선명하게 선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메시지를 놓치고 있는 수많은 이들이 이땅 가운데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늘항상 겸비하여서 언제든지 주님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들려주실때에 영적으로 더욱더 민감하여서 주님의 말씀 하시는데에 있어서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말씀앞에 반응할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지혜안에 머물러 있을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미련하게 되지 아니하는 방법이라 그렇습니다. 매튜핸리는 그의 주석에서 말씀하기를 “정직한 자들이 지각 있고 분별있는 자들이 된다면, 그것은 신앙에 큰 유익을 가져다 주리라는 것을 명심하라. 그러므로 모든 선한 자들은 선한 지식을 갖추는 자가되고자 하여야 하고 그들의 지식이 더할수 있도록 위하여 부지런히 왕래하며 그 지식을 얻을수 있는 수단들을 사용하는데에 힘써야 한다”. 이러한 권면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진리앞에 경주해야할 삶을 더욱더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리석고 무지함에서 벗어나야할 필요가 우리안에 더욱더 거룩한 동기가 생겨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주님의 지혜를 향한 선한 열망을 불어 넣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더욱더 주님을 사모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을 향하기 보다는 그리스도를 향하고, 지혜를 추구하며,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자리를 기쁘게 여기며 주를 섬길수 있는 귀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두 번째대지, 미련함을 경계할수 있어야 한다. (7절)
성도는 계속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며, 미련함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입니다.
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멸시한다는 단어를 살펴보면 지혜와 훈계를 무례하게 대한다는 말입니다. 얕본다는 것입니다. 경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새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혜를 멸시하는 사람입니다. 거룩한 것들을 멸시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다시말하면 말씀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다시말하면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세상 사람들일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안에 깊히 뿌리박지 아니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의지하여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하면서도 전혀 의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경건했던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어떤이들은 어리석은 상태로 빠질수 있는 위험성이 늘 항상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제가 앞에서 말씀 드린바와 같이 솔로몬은 지혜자 였습니다. 한때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마음으로 주를 위해서 온전히 헌신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향하여서 지혜를 주셨고, 또한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동안에 모든 것을 더 풍성하게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솔로몬때에 이스라엘은 태평성대를 누렸고, 수많은 나라의 부러움을 받았던 축복을 누렸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말년에 그의 삶이 어떠하였습니까? 우상숭배와 완악함으로 하나님을 떠나는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지혜롭던 그가 하루 아침에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변해 갔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했던 수많은 이들이 지혜자로서의 삶을 떠나는 모습이 오늘날에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한번 받은 은혜도 우리가 깨어 있지 아니하고 은혜를 보전하지 아니하면 차갑게 식어질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께 받은 소중한 것들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는 그런 실수를 범하는 자입니다. 솔로몬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의 모습만 보아도 그러한 자들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만나 볼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서 감사하지 않는다면 안될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많은 것들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혹여나 하나님을 향하여서 불평은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가 최선의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우리가 마음을 지키지 아니한다면 우리는 받은 은혜를 잃어버리고, 지혜를 잃어버리며 우매한 자의 자리에 어느날 앉아 있을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고, 우리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살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리석은 자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자가 또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지혜로운 자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가 때로는 종이 한 장 차이일수도 있습니다. 주의 은혜가 우리에게 늘 항상 필요합니다.
3. 마치는말
저는 오늘 잠언1:1-7절 본문을 가지고 “지혜안에서 거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지혜를 추구하며, 지혜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무기력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잠들게 하는 여러 가지 유혹과 시험이 우리주변에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더 지혜를 추구하며,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미련함을 경계할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때에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풍성하게 누릴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며, 늘 항상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