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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이적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박종열 목사

아침그림 2017. 11. 22. 18:37

예수님의 이적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들어가는말.

 

이글의 연구자는 본글을 통하여서 첫 번째로, 이적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복음서를 통하여서 보여 주신 이적이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살펴보게 될 것이다. 특별히 오늘날 성도들을 말씀으로 섬겨야할 설교자들이 예수님의 이적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 성도들에게 설교할수 있어야 하겠다. 이글은 예수님의 이적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교해야 하는가?” 여기 까지만 연구의 범위를 한정할 것이다. 이 부족한 글이 그리스도께서 복음서를 통하여서 행하신 이적을 바로 이해하고, 현장에서 주님이 맡기신 귀한 양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는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수 있었으면 한다.

 

. 이적의 의미.

 

이적이라는 단어의 의미

 

기사는 어떠한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놀라워 하는 태도를 뜻한다. 즉 놀랄만하고 희한한 일이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가 성경에 많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이적은 희한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기적(miracle)”을 의미하는 가장 일반적인 헬라어 단어는 두나메이스(dunameis)이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강력한 일, 권능의 행동을 의미한다. 또한 이적은 표적이라는 단어로 때때로 사용이 된다. 이적이 표적이라고 하는 명칭으로 사용되는 것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표적과 기사는 때로는 같이 사용이 되는데 두 단어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표시하는데 그 차이점은 표적은 주로 인간에게 나타나고, 기사는 자연계에 나타나는 이적이다.” 예수님의 기적은 단순히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어떤일의 수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의미있는 실체들을 가리키는 표적, 사인이다. 이적은 또한 하나님의 능력또는 능력있는 역사로 불리어서, 기사와 표적이 이적의 결과를 설명해 주는 명칭이 된것처럼, 이것은 원인이 명칭이 된 것이다.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의 사자들에게 의해서 행사되었다. 이와같은 명칭은 그 낱말이 가지는 독특한 의미보다 새로운 능력이 세상에 들어왔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기적에 대한 또 다른 단어는 에르곤인데, 이것은 (work)”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요한사도는 종종 이적을 역사, 또는 일(work)이라는 명칭으로 표현한다. 5:36, 7:21, 10:25, 14:11, 15:24. 이적은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이루어진다고 볼수 있다. 이 단어는 예수님의 기적이 아버지의 일과 비교된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사용된다(5:16-17).

2. 기적의 정의

 

1)언어학적인 입장.

 

성경에서 기적은 펠레라고 하는 히브리말로 표현이 되었다. 이 말은 팔라라는 동사에서 온 말인데 분리한다, 구별한다, 놀라게 한다는 뜻이다. 또한 헬라어로는 다우마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다우마라는 말은 경이로운일, 놀라운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기적이란 말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성과 판단으로 볼 때 놀라운 것, 참 이상한 것, 구별된 것, 분리된 것을 기적이라고 성경은 말하였다. 그러므로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볼때에 이상하고, 놀라운 것이라고 할수 있다.

 

2) 여러학자들의 의견

 

데이비드 흄은 카톨릭에서 자연법을 깨거나 반대하는 것을 기적이라고했다. 창조질서를 파괴한 법이나 피괴한 것을 카톨릭이나 다른 학자들은 기적이라고 한 것이다. 즉 순리대로 인간이 이해하는 창조법을 어기는 것을 기적이라고 보았다. 현대 과학자들은 기적을 하나의 무지로 보았다. 이것은 미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기적을 더 높은 자연법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기적은 모순이다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이해되어진 자연과 모순된다는 것이다. 기적은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법보다 더 높은 차원의 다른 세계의 법이라고 어거스틴은 해석했다. 찰스하지는 기적을 초자연적인 법이라고 해석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힘이 우리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도 문제가 있을수 있다. 자연법과 초자연법을 나누는 것도 무리가 있을수 있다. 이적이 초자연적인 힘의 개입이라는 견해도 성경적인 견해라고 볼수 없다. 이와 같이 기적이라고 하는 여러 가지 주장을 살펴보았는데 성경적인 입장과는 조금씩은 거리가 있는 입장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이적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교해야 하는가?

 

1.성경에서의 이적을 어떻게 이해 하여야 하는가?

 

개혁주의 신학을 주장하는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요한 칼빈은 기적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시켜 나가는 표적이다. 그리고 교회의 완전한 구속을 지향하는 표지다라고 설명 했다. 사복음서 전체를 통틀어서 36개의 예수님의 기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중에 9개는 소위 자연기적이고, 세 개는 부활기적, 7개는 축사, 그리고 17개는 치유기적이다. 복음서 기자들은 기적이라고 하는 주제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마가복음에서도 처음 10장중에 절반이 기적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기적의 의미는 무엇일까?

 

1)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심

 

특별히 예수님의 경우 어떤 이적도 이적을 위한 이적은 없었다. 다 구원과 관계가 있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2)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 이심을 드러내심

 

예수님의 주되심을 드러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무리들이 예수를 오실 분으로 본 것은 옳았다. 이 기적은 그들이 예수를 모새와 같은 지도자, 선지자, 또는 통치하실 소망의 메시아로 생각하게 했다. 그러나 무리들이 예수를 왕으로 만들고자 하는 메시아적 논조가 예수로 하여금 그곳에서 물러나게 하신다. 왕권에 대한 이런 오해가 있은 후에 예수는 홀로 산으로 물러나신다.

 

3) 하나님 나라가 이땅에 임하였음을 밝히심

 

벤자민 워필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주님이 이땅에 오실 때 하늘을 끌고 오셨다. 그분의 사역에 동반된 표적들은 그분의 본향인 하늘로부터 가지고 오신 자취일 뿐이다.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모든 능력에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실현되고 그 임재가 증거되고 있다는 사실은 위에서 말한 것과 관련이 있다. 이것이 사실상 마귀를 좇는데서 나타난 바와 같이 여기서는 그토록 명료하게 표현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천국선포와 그의 기적들이 자주 동시에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속에 포함되어 있다. 예수님은 말씀과 행동으로 천국을 선포하셨다. 더구나 그가 세례요한에게 주신 답변 속에는 천국의 도래가 예수님의 기적적인 병고침에서 나타났다는 분명한 표시가 들어 있다. 예수님의 기적들이 피조물의 회복을 보게 하고 천국의 구속적인 모든 의미를 가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한, 어떤면으로 보나 그것들은 왕국의 도래라는 개념속에서 유기적이고 자연스러운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땅에 죄악으로 물들과 파괴되어진 곳들에서 이적을 통하여서 정상화 시키는 것들을 보여주시는 것이라는 개념도 있다. 천상적인 정상화 행위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예수님의 이적은 세상의 부패한 경로와 악한 마귀의 영역을 혁신적으로 타파하는 행위였다.

 

4) 제자들이나 택하신 이들의 구원과 믿음을 굳게 하심

 

또한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심으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셨다고 말한다. 그리하여서 예수의 첫 번째 이적인 가나 혼인잔치에서의 이적으로 인하여서 제자들은 그를 믿게 되었다고 말한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사건이 나온다. “이적의 계시는 신하의 믿음에 성장을 야기한다”.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여인의 치유사건에서 예수는 기적을 추구하는 자들의 믿음은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 오도록 도와주는 원칙이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기적은 믿음을 생성하거나, 견고케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거나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김홍전 목사는 그의 설교를 통하여서 이적이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남김없이 하나님 나라의 바른 상태와 바른 도리안으로 돌아오도록 하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계속해서 김홍전 목사는 속죄와 중생이 가장 위대한 이적이라 하면서,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적을 통하여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믿을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기적을 통하여서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 선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김홍전 목사는 계속해서 강조하기를 이적이라는 것이 말씀과 함께 병행해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말씀을 떠나서 기적만으로 구체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법이 없다라고 밝히고 있다. 사람들은 자연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희미하게 알수 있지만, 그것으로는 구원에 이를수 있는 믿음을 얻을수 없다. 그러므로 기적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5) 치유사역, 치병사역

 

복음서들은 종종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을 예수 사역의 고정된 특징으로 묘사하고 있다. 귀신을 좇아내는 사역도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예수님 당시에 어떤 이들 역시 치유와 귀신 추방등을 하기도 하였지만 그 당시의 어떤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는 거의 전혀 의식을 사용하지 않고 몇 마디 명령하는 말만 종종 사용하였을 뿐이다.

 

 

6) 이적은 때때로 예수의 성품을 나타내 보여 준다.

 

그의 치유 사역은 인정을 받으려는 시도가 아니었고, 무엇인가 증명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사역은 그가 부딪히는 인간적인 곤경에 대해 동정을 느껴 그가 자발적으로 응답한 것이었다. 예수의 다른 기적들은 비교적 수가 적으나 고통당하는 자들에 대한 자발적이고 이타적인 응답의 동일한 패턴이 이 기적들 중 대부분에서 다시 한번 나타난다. 배고픈 무리를 먹이고, 위기의 순간에 포도주를 공급하고, 밤새워 고기를 잡았으나 허탕을 친 후에 고기를 잡도록 해주고 또한 호수의 돌풍을 잠잠케 했던 일이 그런 기적에 속한다. 예수가 이런 문제들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해결했다기 보다는 그의 인격의 자연스런 결과로 생긴 것이었다.

여기에서 예수의 목적은 믿음을 불어 넣어 주거나 믿음에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긍휼을 보이시기 원하셨다(6:34). 하지만 그것은 일차적으로 굶주린 군중에 대한 그분의 동정심이 아니라, ”그 목자없는 양같음때문이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에 적절한 지도자가 없음을 선지자가 한탄했던 에스겔서 34장을 암시한다. 예수님의 기적은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의 기적들은 메시아로서의 권능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랑의 섬김안에 있는 그의 메시아의 권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의 표현으로서의 기적의 역할은 지나치고 과대평가되어서는 안되는데, 마치 그의 치유사역이 그의 중심인것처럼 오해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7) 예수님의 이적에 대한 잘못된 해석들

 

이 기적들이 지난 구속사적인 의미가 도전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들은 예수님이 지닌, 어떤 카리스마적인 재능의 것이라고 해석되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기적들은 기적을 행하던 선지자들의 기적이나 당시 헬라와 유대 사회에 있던 카리스마적인 능력들과 비교되었고, 또 부분적으로는 동등하게 취급되었다. 이리하여 오토의 잘알려진 표현에 따르면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카리스마적인 은사를 가진 대표적인 성인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 오토는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을 종교사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 인물이 복음서에서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누군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자라고 할 때 그것은 구약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과 동등한 자라고 그는 생각한다. 오토는 구속사적인 유형의 카리스마적인 은사를 적어도 일반적인 정신생활과 유사한 성향의 능력의 신비한 초월이라 표현한다. 또 그는 그것을 현대적인 심리치료 현상과 관찰로서 밝혀내려고 애쓴다.

 

2. 예수님의 기적을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행하신 이적을 설교자들이 어떻게 설교하고, 성도들에게 가르쳐야할 것인가? 때로는 이러한 본문을 오늘날에 성도들과 믿는 이들이 그대로 행할수 있다고 가르칠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오늘날에 동일한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서 때로는 불건전한 모습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적을 베푸신 의미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아야할 것이다. 김준범 교수님께서는 복음서 연구 본강의를 통하여서 예수님의 이적을 믿음을 일으키는 예언적 수단으로서의 이적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일으키신 모든 이적을 원리화 시키고, 모두 교리화 시켜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각각의 이적이 역사적 맥락이 있다고 한다. 각각의 사건에 고유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예수님의 이적을 천편일률적으로 이신칭의에 관점에서만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셨다. 이러한 점 역시도 조심해야할 부분이다. 앞에서 본 연구자가 살펴본 대로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이적을 행하셨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 이심을 드러내기 위하여서 이적을 행하셨다. 또한 하나님 나라가 이땅에 임하셨음을 나타내 보여 주시기 위하여서 이적을 행하셨다. 예수님의 이적을 통하여서 그분의 자비하신 성품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택하신 백성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을 통하여서 예수님 자신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알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도록 하시기 위하여서 이적을 행하셨다. 그러므로 본 연구자는 여러 가지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신 이유들이 있지만, 택하신 백성들의 구원을 위하여서, 그리고 그들의 믿음의 강화를 위하여서 이적을 행하신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연구하여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해줄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증인들의 실제의 고백이다. 예수님의 이적을 눈 앞에서 본 이들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글로서 읽어서 예수님의 이적을 경험한 이들이나 동일하게 그분이 행하신 이적을 목격한 증인들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역시도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을 통하여서 그분이 누구신지 알고 믿을수 있다. 그리고 그분이 전하신 복음이 생명의 복음임을 확신할수 있다. 이러한 복음을 듣고, 믿은 이들은 동일하게 이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어야만 한다. 오늘날 설교자들 역시도 예수님의 이적을 복음을 정확하게 전달할수 있는 도구로서 올바르게 사용할수 있어야 하겠다. 우리는 이적을 행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서 이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대속을 이루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깊히 신뢰할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 예수님의 이적을 올바르게 사용할수 있는 가장 유익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결론

 

지금까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이 무엇이며, 그 의미에 대해서 살펴볼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적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이땅에 드러내시기도 하신다. 또한 예수님 자신이 누구이신지 이적을 통하여서 드러내신다. 또한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자비하심을 나타내 보여 주시기도 하신다. 이적을 통하여서 여러 가지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이적은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또한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하시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 가장 성경적인 답변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설교자들이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의 이적을 설교할때에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고, 또한 믿는이들의 믿음을 강화 하기 위한 목적으로 본문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전달할수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