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스크랩] 고난과 인도하심, 행9:23-31/박종열 목사

고난과 인도하심, 9:23-31/박종열 목사

 

1. 들어가는말

 

계속해서 사도행전 말씀을 주일마다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건안에 어떤 뜻이 나타나 있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도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하여서 인생이 완전히 변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핍박하던 복음을 전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지 아니하시면 일어날 수 없는 그런 기적과 같은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울이라고 하는 그런 인물을 택하셨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아마도 극적으로 그렇게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더 헌신하도록 하고 더 깊히 불사르도록 하는 그러한 목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 큰 사랑으로 부르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것들을 바울에게 맡기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더 큰 그릇으로 바울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따라 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고난이라고 하는것인데요. 그 어떤 사람이라고 해서 고난받는 것을 즐겨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필연적으로 고난이라고 하는 과정을 교회에게나 복음전도자에게 그런 과정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많은 것들을 맡기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많은 것들을 바울이라고 하는 자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바울이 황송할 것입니다. 자신이 젊은 시절에 그렇게 혈기왕성할때에 유대교 신앙에 깊히 빠져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그런 자들만 보이면 싹쓸이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얼마나 그일에 탁월했던 사람이었습니까?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불려가서 그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변한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거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알려진 사람중에서 바울과 같은 사람이 그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많은 빚을 진 사람이었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또한 많이 받은 사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고난의 길을 가더라도 자신이 한 행동이 있으니까? 복음과 예수를 위하여서 겁 없이 그 한몸을 던질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자기 자신이 한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은혜만 생각을 하면 눈물이 핑도는 그런 사랑을 바울이 아는 것이지요. 그리하여서 예수님이 한마디 하시면 군말하지 아니하고 자기 한몸 예수를 위하여서 던지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예요. 죄인중에 괴수였던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불러주신 것 그사랑만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눈이 번쩍 뜨여져서 눈물 콧물 다 흘릴만한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더 크게 사용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완전히 예수만나서 옛날의 자기 삶을 생각하면 눈물이나고 이제 내 삶 가운데 예수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더 소중하게 사용하신다는거예요. 전부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어떻게 사용하실지? 우리가 조금은 예상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바로 그런 말입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아서 부르심을 받았는지? 그 깊이가 사람들 마다 다 달라요. 그러므로 예수를 온전히 만난 사람, 제대로 만난 사람이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2. 본문

복음 사역의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23절에서 -26절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가 아무렇게나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몇날몇일을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배운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하여서 고민한 결과 예수께서 부르신 그 부르심이 하나님의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신 것임을 바울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잘못 알고 잇었다는 것을 꺠달았습니다. 그렇게 했을때에 바울안에 새로운 신앙의 체계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를 만난 기쁨이 생겼습니다. 바울이 기도할때에 예수님께서 알려주셨어요.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와서 눈을 뜨도록 하여 주시는 것을 하나님이 증거로 미리 보여주세요. 이러한 놀라운 증거들이 새로 믿은 바울에게 계속 생깁니다. 놀라운 것이지요. 예전에 유대교 전통 가운데 있었을때에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자기 자신의 잘난 맛에 믿는 것이었죠. 그러나 진정으로 거듭나고 나서 예수 믿을때에 그안에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고 그의 삶을 인도하시고 세워주시고 동행하여 주시고 길을 인도하시고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관여를 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세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이 바로 이러한 고난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복음 사역의 길이 고난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복음 사역자의 길이 고난의 길이라고 하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거듭났다는 것은 수천만 수억만의 사람들이 받지 못하는 그런 은혜를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 사랑과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하여서 육체의 고난을 당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손해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길을 걷도록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므로 친히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그런 삶의 모범을 사신 것이지요. 그러므로 복음의 일꾼이라고 여기는 자들의 태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서 복음 사역을 하면서 작은 고난일지 많은 고난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난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각오를 미리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이 바로 그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역시 자신이 가는길에 그런 고난의 사건들이 일어날지 잘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은혜 받은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의 나라까지 올라가서 삼층천까지 보고 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주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 찌라도 그것이 잠깐 지나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에 간다는 그런 영광을 알기에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러한 자들에게 많은 것들을 주세요. 부르실때에도 사연이 일반 사람보다 많아요. 이런 자들이 많이 주님께로부터 맡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많이 맡은자에게 많이 찾을 것이란 말씀이 바로 이런 것과 연결이 됩니다. 너에게 많이 베풀어 주었다. 너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다른 이들 보다 고생을 좀더 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부르시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으로 인하여서 고생길을 허락 하시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묵상하고 또한 말씀의 놀라운 것들을 하나하나 배워나가고, 또한 하나님께서 저 자신을 조금씩 깨뜨리시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많은 것을 맡기셨구나? 다른이들 보다 더 많이 맡기셨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이들이 받지 않은 그런 사랑을 저에게 보여주신 것이구나! 그것이구나!! 물론 바울과 같이 많이 보여주시지는 아니했을지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이 무지한 사람에게 복음의 영광스러운 것들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죄송하고 죄송한 것은 주님의 의도한 대로 살아들이지 못하고 세월을 수없이 많이 낭비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죄송한 것 같습니다. 받은 것은 저 역시도 바울과 같은 그런 사랑과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처럼 발가락의 때만도 못하게 헌신하는 면들이 부족하여서 그 사랑을 생각할때에 눈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나를 사랑하시고 복음전도자로 세워주셨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그리하여서 바울에게는 영적인 고향이 있었습니다. 바로 다메섹인 것이예요. 아무것도 몰라서 씩씩거리면서 예수믿는 자들을 핍박하러 가던 곳에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바울아 바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이다. 가시채를 뒷발질 하는 것이 너에게 오히려 고생이다. 그 사랑을 생각하면 잠간 주님의 백성들과 고난당하는 것이 세상의 죄악을 누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라고 하는 그런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힘을 동일하게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평신도 이던지 목회자이던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잠시 잠간 이 세상에 살때에 주를 위하여서 고난당하고 고생하는 것들을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받은 것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보십시오. 바울이 예수 만나서 세월이 좀 흘렀습니다. 그리고 다메섹에서 자신이 만난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어떤일이 일어납니까? 복음으로 인하여서 핍박이 바로 나타납니다. 승승장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놀라운 역사가 먼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인하여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9: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바울 때문에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기로 작전을 짰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너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완전히 삶이 바뀐 사람이 다메섹 지역에서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고난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적지 않은 그런 고난이었을 것입니다. 처음 만나는 그런 고난이었을 것입니다.

 

9: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렇게 하여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기 위하여서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킵니다. 그들은 아마도 화살이나 창이나 칼을 잘 사용하는 그런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목숨 주님을 위하여서 드리리라 라고 했을 것입니다.

 

어려움 당한 지체를 도와야 한다.

 

바울이 이렇게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가 있습니다. 새로운 동료들이 있습니다. 함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마음을 함께 해주는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9: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여기서 그의 제자들이란 다메섹에서 바울이 복음 사역을 했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바울은 꽤 오랜 시간동안 다메섹에서 복음을 증언하는 삶을 살았던 것같습니다. 바울이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다메섹에서 사역하면서 만난 그런 그리스도의 지체들인지? 아니면 바울이 얻은 사람들인지 성경은 제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지체들을 허락하여 주셔서 그들로 인하여서 그가 어려움 당할때에 도움을 받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체라고 하는 것은 한 몸안에 하나님께서 있도록 하신 그런 지체라는 것입니다. 어려움 당할때에 돕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어려움당하는 지체들이 주변에 있습니까? 도움을 주는 것이 당연한 것 입니다. 25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에게 어떤 어려움이 생겼습니까? 예루살렘으로 제자들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탈출하였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종류의 어려움인데요.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제자들이 바울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형제로서 진심으로 예수 만난 사람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예수 핍박하는 사람으로 알았고 지금도 무슨 공작을 펴고 있는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예루살렘 교회 안에 있었지만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외로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에 이러한 어려움을 알았던 바나바 라고 하는 제자가 바울을 도웁니다. 지체이기 때문에 지체가 어려움을 당하면 돕는 것이 바로 지체입니다.

 

9:27-28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그렇게 하여서 어떻게 되었나요?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은 한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사울이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드나들었다는 의미가 있는 말이다. 자유롭게 드나들었다는 것은 기독교인들로부터 받아들여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함께 하고 마음이 통하는 그런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진심으로 교제하는 그런 지체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깨어 있는 사람의 역할이 어떻습니까? 어려웠던 것들을 도와주는 손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9:29-30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바울은 이렇게 예루살렘 공동체안에서도 받아들여 졌어요. 그리고 그곳에서도 마음을 다하여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때에 또 바울로 인하여서 어려움이 생깁니다. 복음전하는 것으로 인하여서 변론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하여서 바울을 또 죽이려고 합니다. 그때에 그리스도인들 형제들이 그것을 알고 30절에 바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서 그를 다소로 보냅니다. 이러한 역할을 해주는 것이 지체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어려움을 누가 제일 잘 아나요? 함께 신앙을 고백하는 지체가 잘 압니다. 그리하여서 그렇게 도와줍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주변에 지체들을 돌아보는 그런 은혜가 함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렇게 할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교회가 든든하게 서갑니다. 도움을 받을때가 있고 또한 도움을 줄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전에 복음으로 물론 사역을 하기도 하였지만 그가 더욱 성숙해지는 그런 기간에는 여러 가지 복음전함으로서 열매보다는 분쟁을 많이 일으키는 면들 또한 있었습니다. 바울이 어려울때에 그의 필요를 잘 살피는 그리스도안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는 지체들의 도움과 돌봄으로 인하여서 바울이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져 가는 그런 축복을 경험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치는말.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예수를 만나게 하시고 또한 파송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귀한 것들을 맡기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길이 고난의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홀로 내버려 두지 아니하십니다. 함께 신앙생활하는 귀한 동역자들과 지체들을 보내주십니다. 그들로 하여금 함께 생활하며 사랑을 나누도록 하십니다. 그러면서 부흥을 주십니다. 우리는 어디쯤 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올찌라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중에 있음을 그런 시야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들을 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지명교회까페

 

 

 


출처 : 지명교회까페
글쓴이 : 아침그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