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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토마스 왓슨 "주기도문 해설 (1)

주기도문의 서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기도의 서론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이다. 우리 주 예수님은 이 말씀 가운데서 그의 제자들과 우리에게 기도의 지침을 보여 주셨다. 십계명은 우리의 생활의 규칙이요, 신조는 우리의 신앙의 대의요, 그리고 주기도는 우리의 기도의 모범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언약궤의 모형을 지시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 우리에게 기도의 모범을 지시하신 것이다(25:9)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였다. 그 의미는, “이것으로 네가 네 기도를 꾸밀 규칙과 모형을 삼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규칙에 의해 우리의 기도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이 말씀대로 기도하라고 말씀 하시지 않고 이렇게라고 말씀하신다. 말하자면, 너희의 모든 간구는 주기도문에 들어 있는 내용과 일치하고 상징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모든 기도를 이 기도에 조화시키고 일치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터툴리안은 이것을 일컬어 복음의 일과 기도서와 대요라고 한다. 이것은 금괴 무더기와 같다. 이 기도의 정확성은 그 창시자의 존엄성에서 나타난다. 한점의 예술작품은 그것의 제작자로부터 추천을 받는다. 그리고 이 기도는 그것의 창시자로부터 추천을 받으며, 이것이 주기도이다. 그 기도의 정확성은 그 내용의 우수성에 나타난다. 이것은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달련한 은 같도다“(12:6)이다. 기도가 이처럼 훌륭하게 그리고 신기하게 지어진 것은 없다. 솔로몬의 아가가 그것의 우수성 때문에 노래중에 노래라고 불리우듯 이것은 기도중에 기도라고 불리울 만하다. 이것의 내용이 훌륭한 것은 첫째, 그것의 포괄성 때문이다. 이것은 짧으면서도 함축성이 있다. 즉 몇마디 말속에 많은 분량이 진술되어 있다. 둘째, 그것의 명확성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역량의 사람에게도 평이하고 이해 가능하다. 셋째, 그것의 완전성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구하여야할 또는 하나님이 주셔야 할 주요 사항들을 간직하고 있다.

 

적용

우리는 주기도에 대하여 크나큰 존경심을 가지자. 이것으로 우리의 모든 기도의 모형과 모범을 삼으라. 우리의 간구들을 이 기도에 적절히 부합시키는 데서 이중의 이익이 생겨난다. 이렇게 함으로서 기도상의 오류가 방지된다. 우리는 우리 앞에 견본을 가지고 있을 때 쉽사리 실수할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뜻대로 ” (요일5:14) 기도할 때 우리를 들으실 것이라고 우리에게 확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코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본보기를 따라 기도할 때 그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 그 자체는 3부분으로 되어 있다. 1. 서문, 2. 간구들, 3. 결론.

 

. 서문의 첫째 부분은 우리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때때로 개인적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아버지는 본질적으로 신성 전체라고 생각된다. 이 명칭 아버지는 우리가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로 아뢰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주기도문에는 하늘에 있는 너희 성도들이나 천사들이여, 우리를 들으라는 따위의 말은 전혀 없다.

어떤 순서로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가? 여기서는 아버지만 불리우고 있다. 우리는 아들과 성령께도 기도를 드리면 안되는가?

비록 주기도문에서는 아버지만 언급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두 위께서도 제외된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언급된 것은 그가 순서상 첫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과 성령도 포함된 것은 그들도 본질적으로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성삼위 모두께서 한 신격 안에 존재하시는 것과 같이 우리 기도 가운데서도, 비록 한 분 위만을 부르기는 하지만, 우리는 모든 분에게 기도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아버지이신가?

(1) 창조에 의해서다. 우리를 지으신 이는 그분이시다.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17:28)고 하였다.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2:10)라고 하였다.

(2) 하나님은 택하심에 의하여 아버지시다. 얼마간을 그의 자녀가 되도록 택하시고 그들에게 하늘나라를 상속해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1:4)라고 하였다.

(3) 하나님은 특별 은혜에 의하여 아버지시다. 그는 그의 성령에 의하여 택자를 성별하시고 거룩의 초자연적 원리를 불어 넣어 주시는데,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3:9)고 한다. 오직 그렇게 성화된 자들만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심과 택자의 아버지 되심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는 보다 영광스럽고 초월적인 방식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아버지시다. 그리스도는 장자권을 가지신다. 그는 장사 곧 영원한 발생에 의한 아들이시다. “만세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8:23)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게 아들이신 것은 그가 아버지와 동질이시며, 그에게 속한 신격의 모든 비공유적 속성들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양자됨과 은혜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아버지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믿음.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3:26)라고 하였다. 불신자는 하나님을 그의 창조주와 그의 심판주라 부를 수는 있겠지만 그의 아버지라고는 부르지 못한다. 믿음은 우리를 적자로 만들며 우리를 하늘 나라의 왕손으로 만든다.

 

어떻게 믿음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 되시게 하는가?

이것은 결합시키는 은혜이기 때문이다. 믿음에 의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제휴와 연합을 가지며, 그래서 혈족관계가 성립된다. 친아들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으므로 우리는 양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장 좋으신 아버지이심이 어느 점에서 나타나는가?

(1) 그는 태초부터 계시다는 점에서이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이가라고 하였다. 이것은 존경심을 불러 일으킬 만하다.

(2) 하나님이 가장 좋으신 아버지이신 것은 그가 완전하시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그는 완전히 선하시다(5:48). 땅 위의 아버지들은 약점의 지배를 받는다. 엘리야는 선지자였지만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5:17)라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전히 선하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약간은 닮을수는 있으나 그와 동등될 수는 없다.

(3) 하나님은 지혜에 관해서 가장 좋은 아버지시다. “홀로 지헤로우신 하나님”(딤전1:17)라고 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안에 지혜의 완전한 개념을 가지고 계신다. 특별히 그의 지혜의 한 분파가 되는 것은 그는 우리를 위해 무엇이 가장 좋은지를 아신다는 것이다.

(4) 그는 가장 많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장 좋은 아버지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16)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애정의 심정을 일으키시는 그는 그 자신이 보다 많은 연민의 정을 가지셨음에 틀림없다. 부모의 애정은 하나님의 그의 자녀에 대한 사랑에 비하면 대리석과 금강석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그의 사랑의 진수를 그들에게 주신다. 택하시는 사랑, 구원하시는 사랑이다.

(5) 그는 풍성함에 있어서 가장 좋은 아버지시다. 그는 그의 모든 자녀들에게 줄 충분한 토지를 가지고 있다. 그는 측량할수 없는 풍성을 가지고 있다(3:8). 그의 부요는 나누어 주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계속 비취면서도 빛이 줄어들지 않는 태양과 같다. 무한하신 그분은 가난할수 없다.

(6) 하나님이 가장 좋은 아버지이심은 그가 그의 자녀들을 개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이 나쁜길로 빠지면 아비는 그를 어떻게 개선할지를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하신 자녀들을 어떻게 개선하실지 아신다. 바울이 성도들을 대항하여 박해의 숨을 내 뿜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즉시 그의 진로를 바꾸셨으며 그를 기도하도록 만드셨다.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9:11)라고 하였다.

(7) 하나님은 절대로 죽지 않으시기 때문에 가장 좋은 아버지시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딤전6:16)라고 하였다. 땅위에 아버지는 죽으며 그들의 자녀들은 많은 상해에 노출되나 하나님은 영원히 사신다. “나는 알파와 오매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1:8)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그들의 아버지로 모신 자들의 존엄성은 어디에 있는가?

(1) 그들은 지상 군주들에게 수여된 것 보다도 더 큰 명예를 얻는다.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귀중하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43:4) 라고 하였다. 악인은 찌끼요(119:119), 겨이다(1:4).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그의 보석의 하나로 꼽으신다(3:17). 그는 그의 자녀들의 이름을 생명책에 적으신다.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4:3)고 하였다. 티끌과 죄로 뭉쳐진 그런 자녀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 이하의 행위라고 혹자는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시기를 부끄러워하시지 않는다.

(2)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 위에 명예로운 칭호를 부여하신다. 그는 그들을 유니우스가 번역하듯 탁월한 자 또는 장대한자라 일컬으신다(16:3). 하늘나라의 왕족으로 난 자들이야말로 탁월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영적인 불사조들이며 창조계의 영광이다.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46:13)이라고 하였다. 그는 그의 백성을 왕의 칭호로서 존귀케 하신다.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1:6)이라고 하였다.

(3)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자들의 영예는 그들이 모두 상속자라는 것이다. 가장 어린 자녀도 상속자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생의 사물에 대해서도 상족자들이다. 그들은 땅위에 사물에 대한 최적의 소유권을 가지며, 그것들에 대하여 성화된 권리를 가진다. 그들은 종종 최소의 몫을 차지하지만 그들은 최대의 권리를 갖는다. 다른 사람들은 사냥고기를 더많이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축복을 더 많이 가진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이생의 사물에 대한 상속자들이다. 그들은 내세에 대한 상속자들이다. “구원얻을 후사들”(1:14)이라고 하였다.

(4)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천사와 동등하게 하신다(20:36). 그들은 천사와 동등하다. 아니, 하나님을 그들의 아버지로 모신 저들 성도들은 어떤 의미에서 천사보다도 우월하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성품을 입으사, 어거스틴의 말대로, 이것을 천사보다 더 고귀케 하시고 존귀케 하셨기 때문이다(2:16).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알수 있을까?

(1) 자식으로서 기질을 가짐으로써인데, 이것은 네가지 사항에 나타난다.

1) 아이가 그의 아비에게 잘못한 것 때문에 울 듯 죄 때문에 눈물로 녹아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바라보셨을 때, 그리고 베드로가 그를 부인한 자기죄를 기억했을 때, 그는 울음보를 터뜨렸다. 돌같은 마음이 없어지고 마음속에는 은혜로운 해빙이 있게 되고 마음이 죄로 인하여 녹아서 눈물이 될 때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표시이다. 아이같은 마음이 죄 때문에 우는 것은 이것이 배은망덕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이같은 마음가짐을 주사 죄로 인하여 이것이 죄요, 불결의 행위요, 악의와 배은망덕인고로 울게 하는 것은 확실히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는 것을 입증한다.

2) 자식으로서의 기질은 공감으로 가득차야 한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를 헐뜯는 불명예들을 마음속에 깊히 새긴다. 그의 예배가 혼합되고 그의 진리가 오류의 독약으로 섞인 것을 우리가 볼 때 그의 영광이 상처받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의 뼈 속에 검과 같다.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궤사한 자를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119:158)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불명예를 당하면 우리는 공감하며 그래서 마치 상복을 입음과 같다.

3) 자식으로서의 기질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의 아비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부자연스럽다. 모든 참다운 하나님의 자녀는 베드로처럼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리고 이 사랑은 두려움과 질투를 일으키는가? 하나님의 참 자녀는 아무것도 그의 아버지의 임재의 상실만큼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내가 저희를 떠나는 때에는 저희에게 화가 미치리로다”(9:12)라고 하였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 대한 사랑은 그의 날을 사랑함으로서 나타난다.“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58:13). 하나님의 자녀의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다. 위선자들은 고인된 성도들에게는 큰 경의심을 가장한다. 그들은 죽은 성도들은 성자로 모시면서도 살아 있는 성도들은 핍박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하늘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를 위해 변론자가 될 것이며, 그의 진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일어설 것이다.

4) 아이같은 기질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를 공경함에서 나타난다. “아들은 그 아비를... 공경하나니”(1:6)라고 하였다. 그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을 우리 몸에 지님으로써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경외하라”(25:17)고 하였다.

(2) 우리는 하나님을 닮음으로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안다. 자녀는 그의 아비의 화상이다. “그들이 너와 같아서 모두 왕자같더라. ,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하늘의 왕을 닮는다(8:18). 사람은 자기를 조금도 닮지 않은 사람을 자기의 아들과 상속자로 양자 삼는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이 그의 자녀로 양자 삼는자는 하나님과 닮았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3:10).

(3)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그의 성령을 우리안에 가짐으로서 알수 있다.

1) 성령의 중재를 가짐으로써이다. 이것은 기도의 성령이다.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4:6)고 하였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기도가 성령에 의해 작성된 줄 알며,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신줄 알까?

기도가 음성일 뿐 아니라 마음일 때이다. 기도가 은사일뿐 아니라 탄식일 때이다. (8:26). 기도가 열정적이고 뜨거울 때이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5:16)고 하였다. 기도가 믿음과 화합되어 있을 때이다. 기도는 하늘의 열쇠이고 믿음은 이것을 돌리는 손이다.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8:15)고 하였다.

2)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 의해서인데, 이것은 성령으로 난다고 일컬어지는 바 다름아닌 바로 중생에 지나지 않는다(3:5). 성령의 이런 중생 사역은 변환 또는 중생의 변화이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12:2)라고 하였다. 성령의 중생 사역이 우리 영혼을 통과하였는가? 우리는 다른 심령으로 되어으며, 겸손하고 천국적인가? 이것이 아들됨의 좋은 증표이며 그래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3)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음에 의하여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8:14) 고 하였다. 자녀가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그는 발걸음마다 유모에 의해 인도받아야 한다.“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지라도”(11:3)라고 하였다.

4) 성령의 증거를 받음으로서이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8:16)라고 하였다. 이 성령의 증거는 구두로 하는 증거나 하늘로부터의 음성이 아니다. 말씀안에서 성령은 증거하신다. 말씀안에서 성령은 자격있는자, 죄를 미워하며 거룩을 사랑하는 그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시라고 한다.

 

(4)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면 우리는 평화애호의 영을 가지고 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5:9)라고 하였다. 은혜는 감미롭고 우호적인 기질을 부어 넣어준다. 이것은 인간들의 영혼들의 거친 것들을 다듬어 준다. 이것은 사자같은 사나움을 어린양 같은 온유함으로 변화시킨다(11:7).

(5)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면 우리는 그에게 가까이 하여 그와 담화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순진한 자녀는 그의 아비 곁으로 접근하기를 좋아하며, 그의 면전에 가기를 좋아한다. 다윗은 그의 성부의 집에서 제외되었을 때 하나님의 제단 근처에 둥우리를 지은 새들을 부러워하였다(84:3). 참다운 성도들은 할수 있는대로 하나님께 가까이 하기를 좋아한다. 말씀안에서 그들은 그의 거룩한 신탁에 가까이 하며 성만찬 안에서 그들은 그의 식탁에 가까이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의 성부의 면전에 있기를 좋아한다. 안식일이 가까워 오는 것을 보고 즐거워한다. 그의 마음은 성례전에서 종종 녹아지고 소생받았었다.

 

적용1: 교훈을 위하여

(1) 만일 그가 번영중에서 그들에게 미소 지으신다면 이것은 사랑으로 하시는 것이다. 그들이 세상을 소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에 의할뿐 아니라 또한 그의 사랑에 의해서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자녀가 사랑안에서 세상의 사물을 소유하는 것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는 그것들에 대한 진정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시다. 그러므로 그는 진정한 소유권을 가진다. 악인은 피조물에 대한 공민적 소유권을 가지지만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니다. 그가 그것을 가지는 것은 아버지의 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는 포목상에서 옷을 취하고 그것을 지불하지 않은 사람과 같다. 그러나 신자는 그가 차지한 땅의 전부분에 대한 진정한 소유권을 가지니, 이것은 그의 아버지께서 그에게 양도해 주셨기 때문이다. 에서는 사슴 고기를 가지고 있었으나 야곱은 축복을 받았다.

(2) 하나님이 아버지신고로 그가 눈살을 찌푸리시더라도, 그가 독필을 휘두르셔서 혹독한 것들을 쓰시더라도, 그가 야단을 치시더라도, 이것은 사랑으로 하시는 것이다. 아비가 그의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토지를 물려줄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벌주고 징계할때도 사랑하는 것이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3:19)라고 하였다. 온유한 처벌은 매일의 양식만큼이나 필요하다. 말씀과 성례 같은 성찬식 만큼이나 필수적이다.

(3) 하나님은 아버지 신고로, 그가 그의 자녀로부터 떠나시고 그의 얼굴을 가리우신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랑으로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자녀로부터 그의 얼굴을 가리우실 때 그는 여전히 아버지시며, 그리고 그의 마음은 그의 자녀에게 향해 있다.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54:8)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악인의 슬픈 경우를 배우라. 악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할수 없다. 비록 하나님은 창조에 의하여는 그들의 아버지셨지만, 그러나 양자에 의하여는 그들이 그의 자녀가 아니었기 때문에, 따라서 그들을 지으신 이는 그들을 구원하고자 아니하시는 것이다.

 

적용 2 : 권면을 위하여

아직도 하나님께 낯선 모든 자들은 이 하늘의 혈연 관계 안으로 들어오도록 노력할지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할수 있기 까지 결코 쉬지 말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모독하였으며 그리고 큰 죄인이었던 나에게도 아버지이실까?

만일 그대가 이제 마침내 기도에 의해 하나님을 찾고자 할진대 그리고 그대의 죄를 끊어버리고자 할진대 하나님은 그대에게 향해 아버지의 심정을 가지시며 그대를 결코 내어 좇지 않으실 것이다. 탕자가 일어나 그의 아버지에게 갔을 때,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15:20)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아라. 하나님께로 가거라. 그의 아버지로서의 연민에 의지하려고 결심하라. 그는 므낫세의 간구를 들으셨던 것처럼 그대의 간구를 들으실지도 모른다(대하33:13).

 

적용 3 : 위로를 위하여

우리가 일천개의 세계를 혹시 가졌을 때보다도 이 아버지라는 말에 더 많은 감미로움이 있다.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는 것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1)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그는 우리를 가르치실 것이다. 어떤 아비가 자기 아들 충고 하기를 거부하겠는가? 하나님은 부모들에게 그들의 자녀들을 교훈하라고 명령하면서도 자기의 자녀를 교훈하시지 않겠는가?(4:10).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48:17)고 하였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그는 우리에게 성령의 가르치심을 베푸실 것이다. 자연인은 신학에는 우수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신령한 방식으로 복음의 비밀을 알려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르치셔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가르치시기 전까지는 우리는 결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2)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면 그는 우리를 향해서 연모의 심정을 가지고 있다. 부모들의 모든 애정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지만 그래도 그것은 하나님의 불꽃에서 나오는 불티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자비의 아버지시다(고후1:3). 그는 피조물 안에 모든 자비와 동정심을 나게 하신다. 그의 자녀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지식을 능가 하는 사랑이다(3:19). 그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의 음성을 듣기를 좋아하신다(2:14). 그는 그들을 위한 근심어린 관심사로 가득하시다.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고 하였다. 그의 눈길은 여전히 그들에게 향해 있으며 그들은 그의 생각에서 결코 떠난 적이 없다.

(3)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면 그는 공감으로 충만하실 것이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103:13)라고 하였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31:20)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두가지 경우에 불쌍히 여기신다.

1) 결점이 있는 경우, 자식이 불구이면 또는 무슨 신체적인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 그 아비는 이것을 불쌍히 여기신다.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신다. “내가 그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줄 것이라”(57:18)고 하였다.

2) 상처를 받은 경우, 자식의 당한 모든 타격은 아비의 마음으로 직행한다. 이와같이 성도들이 고난당하면 하나님은 동정하신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63:9)라고 하였다.

(4)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그는 우리에게서 보시는 가장 미미한 선도 눈여겨 보실 것이다.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38:9)라고 하였다. 만일 참회의 눈물이 하나라도 눈에서 나오면 그는 이것을 보신다. “네 눈물을 보았노라”(38:5)고 하였다. 성도들이 자기 자신들 안에서 좀처럼 눈여겨 보지 못하는 좋은 점을 하나님은 특별한 방식으로 관찰하신다. “내가 주릴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25:35,37)라고 하였다.

(5)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그는 우리가 하는 모든일을 선의로 해석하실 것이다. 우리들 자신이 책망하는 바 저들 의무들을 그는 명예로 보답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그의 최대의 의무들을 음미해 볼 때 그는 너무나 많은 죄가 그것들에게 고착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만 당황하게 된다. “주여, 내 기도에는 향기 보다는 유황이 더 많이 있나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 자신이 질책하는 저들 의무들을 명에로 보답하실 것이다. 비록 그의 자녀들의 봉사에는 많은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그들의 봉헌을 물리치지 않으실 것이다. 아들로부터 편지를 받는 아버지는 그 편지에 비록 얼룩점들과 틀린 어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친절히 받는다.

(6)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그는 정도껏 우리를 교정하실 것이다. “내가 공도로 너를 징책할 것이요”(30:11)라고 하였다. 이것을 그는 두가지 방법으로 하실 것이다. 1)그는 우리가 질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지우지 않으실 것이다(고전10:13). 그는 우리의 체질을 아신다(103:14). 하나님은 자녀의 자녀들의 기백이 자기 앞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하여 그의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무거움 짐을 지워주지 않으실 것이다. 2)그는 정도껏, 즉 일정기간 동안 교정하실 것이다. 그는 고생이 너무 오래 가로놓여 있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57:16)라고 하였다.

(7)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그는 우리의 모든 고생과 긍휼을 섞으실 것이다. 만일 그가 우리에게 쑥을 마시라고 주신다면 그는 이것을 꿀로 섞으실 것이다. 언약궤에는 지팡이와 만나가 놓여 있었다. 이와같이 우리 아버지의 지팡이에도 항상 얼마간의 만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몸을 고생시키실 때 그는 양심의 평화를 주신다. 고생에는 긍휼이 있다. 고생은 죄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오는 것이다.

(8).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악한 자가 우리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는 성도들의 최대의 원수이다. 그는 그의 시험을 가지고 그들과 싸우기 때문이며, 법정적인 또는 법적인 의미에서도 그러하니 그는 고소자가 되어 그들을 항변하기 때문이다. 그럴지라도 아무 방도로도 그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얼마 안 있어 사단을 성도들의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실 것이다(16:20). 하나님은 모든 사단의 시험으로 하여금 그의 자녀들의 유익을 증진시키도록 만드실 것이다. 1) 시험은 그들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고후12:8). 2) 시험은 그들을 낮추시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고후12:7)라고 하였다. 3) 시험은 그들을 더욱 은혜 안에 확립시켜 준다.

(9)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아무런 참된 불행도 우리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다.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91:10)라고 하였다. 걱정거리가 미치지 못한다고 말씀하지 않고 화가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해를 받지 않는 특전이 있다.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10:19)고 하였다. 그는 고생에 의해 개선된다.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12:10)고 하였다. 용광로가 금에게 무슨 해를 끼치겠는가? 단지 더욱 순수하게 만들 뿐이다. 고생이 은혜에게 무슨 해를 끼치는가? 오직 그것을 세련되게 정화시킬 뿐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아무 불행도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무 정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라고 하였다.

(10)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우리는 은헤의 보좌에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도 된다. 만일 사람이 그의 원수에게 애원한다면 희망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이 아버지에게 간청할 때 그는 성공할 자신을 가지고 희망할수 있을 것이다.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7:9)라고 하였다.

(11)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그는 우리와 위험 사이에 서실 것이다. 아버지는 그의 자식으로부터 위험을 막아낼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방패라 부르신다. 방패처럼 그는 머리를 보호하시고, 급소를 지키시며, 그의 자녀들로부터 위험을 차단 시켜 주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자가 없을 것이니”(18:10)라고 하였다. 그는 아타나시우스를 이상하게 보전하셨다. 원수가 와서 그를 수색하던 전날 밤에 하나님은 그의 마음속에 그가 투숙했던 집 밖으로 떠날 마음을 넣어 주셨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91:4)라고 하였다. 그는 그의 거룩한 천사들을 임명하사 그의 자녀들을 지키는 구조원을 삼으신다(1:14). 1) 천사들은 다수의 호위병들이다(왕하6:17). 2) 강한 호위병이다. 한 천사가 185천을 죽였다(왕하19:35). 3) 천사들은 신속한 호위병이다. 그들은 우리를 도우러 날아간다(9:23). 4) 천사들은 방심없는 호위병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감시한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34:7)라고 하였다.

(12)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우리는 우리를 위해 그가 좋다고 보시는 그 어떤 것에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34:10)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때때로 그의 자녀들을 어려운 살림에 가두어 두시기를 기뻐하시지만 그러나 이것은 그들을 위하여 좋은 것이다. 양이 부족한 목초지에서 가장 잘 번성하듯이 하나님께서도 과도히 많은 것이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좋지 않을수도 있다고 보신다. 풍부는 과도의 원인이 된다. 번영속에 인간의 인격은 방탕해 진다.

(13)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성경의 모든 약속은 우리것이다. 그의 자녀들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6:17)이라고 일컬어 진다. 악인은 성경에서 저주 외에는 아무것도 주장할수 없다. 약속들은 자녀들의 떡이다. 그것들은 위로의 젖을 내주는 복음의 유방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면 누가 이 유방을 빨 것인가? 용서의 약속은 그들을 위한 것이다. 고침의 약속도 그들을 위한 것이다(57:19). 구원의 약속도 그들을 위한 것이다(23:6). 크리소스톰은 성경을 정원에 비유한다. 약속들은 이 정원에서 자라나는 과일 나무들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경에 있는 그 어느 약속에게로도 가서 이것으로부터 위안을 딸수 있다. 그는 그 약속의 상속자이다.

(14) 하나님은 그의 모든 자녀들을 정복자로 삼으신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정복한다.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자는 가장 튼튼한 성벽을 정복하는 자보다 더 강하다. 성도들은 자기 자신들의 육욕을 정복한다. 그들은 이들 군주들을 철 고랑으로 결박한다(149:8). 비록 하나님의 자녀들은 때때로 좌절되기도 하고 단독 싸움에서 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승리를 잃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을 정복한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고 하였다.

(15)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그는 시시때때로 얼마간의 그의 사랑의 증표를 우리에게 보내주실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기도의 응답을 주시는데 이것이 사랑의 증표이다. 그는 그들에게 성령의 첫 열매를 주시는데 이것이 사랑의 표이다(8:23).

(16)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그는 우리를 즐겁게 해주시고 아끼실 것이다.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3:17)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자기 자녀들을 아끼심은 그들에게 향한 그의 인자하심의 뜻을 내포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 하지 아니하시며”(103:10)라고 하였다. 그는 그의 친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셨는데 그의 양자들을 아끼신다(8:32).

(17)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그는 마지막 날에 우리에게 존귀와 명성으로 입히실 것이다. 1) 그는 그의 자녀들의 무죄를 해명하실 것이다. 그의 자녀들은 이생에서 이상하게도 오해를 받는다. 그들은 파당적이라, 선동적이라고 불리운다. 엘리야처럼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라, 루터처럼 반역의 나팔이라 불리운다. 하나님은 어느날인가 그들의 무죄를 해명해 주실 것이다. 그는 그들의 치욕을 굴려 버리실 것이다. 그는 성도들의 옹호자가 되실 것이다.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37:6)라고 하였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어느날 인가 악인들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어찌하여 너희는 내 자녀를 비방하고 헐뜯기를 두려워 아니하였느냐? 2)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선한 행위에 대한 공개적이고 명예로운 설명회를 개최하실 것이다. 악인의 죄가 공개적으로 진술되어서 그들의 영원한 불명예와 혼란이 될 것처럼 성도의 모든 선한 행위도 공개적으로 진술될 것이며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4:5)고 하였다.

(18)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그는 우리에게 좋은 상속을 물려 주실 것이다. (벧전1:3,4)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상속을 이어줄 것이며 그 상속은 왕국에 못지 않은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12:32)고 하였다.

(19)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친척을 잃은 경우에도 위로가 될 것이다. 그대는 부친을 잃었는가? 만일 그대가 신자라면 그대는 고아가 아니니, 그대에게는 하늘 아버지가 결코 죽지 않으시는 아버지가 계시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딤전6:16)라고 하였다. 당신 자신의 죽음의 경우에도 위로가 된다. 하나님은 그대의 아버지시고 죽음은 그대의 아버지에게로 떠나감에 지나지 않는다. 사망도 너희의 것이라고 바울이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전3:22).

(20)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그는 우리의 상속권을 빼앗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법령이야말로 성도들의 불굴의 인내가 의지하고 있는 바로 그 기둥과 토대이다. 그 법령은 양자됨의 매듭을 너무나 단단히 붙들어 매주므로 죄도 죽음도 지옥도 이것을 끊어버리지 못한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8:30)라고 하였다. 예정은 하나님이 몇몇을 영광의 상속자가 되도록 포고하시는 것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그 상속자에게 면류관을 양도해 주실 것이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을 하늘 나라에 가기까지 보전하시나?

(1) 성령의 감화력에 의해서이다. 그는 그의 성령의 감화와 협동에 의하여 택자의 영혼 안에 은혜를 지속시키신다. 그는 경건자 안에서 계속적으로 은혜를 자극시키시고 소생시키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위해 썩지 않는 상속을 얻어 놓으셨고, 그리고 성령은 그의 집행자로서 상속이 그들에게 내려지도록 돌보게 하신다(벧전1:4,5).

(2) 그는 그의 중보기도의 우세에 의해 택자의 영혼속에 그의 사역을 끈기 있게 지속시키신다.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 이니라”(7:25)고 하였다. 그는 모든 성도가 하늘 나라에 이를때까지 은혜 안에서 끝까지 견디도록 기도하신다.

(3) 하나님의 자녀들이 상속권을 빼앗길수 없다는 것, 또는 하늘나라의 면류관을 얻을 그들의 권리에서 밀려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으로 보아 분명하다. 신자들은 그에게 결합된다. 그들은 믿음의 힘줄과 인대에 의해 머리에 대한 지체들로서 그에게 결합되어 있으니, 그러므로 그들은 끊겨지지 않는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1:23)라고 하였다.

 

그러나 최후 견인의 교리와 천국 상속의 확실성은 육욕적 안정감과 거룩지 못한 생활태도에 이를수도 있다.

부패한 성품은 이 꽃으로부터 독약을 빨아 들일수도 있다. 그러나 은혜의 효험을 그의 마음에 느낀 사람은 이 교리를 감히 악용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을 스스로의 안정감과 방종으로부터 지켜주는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적용 4: 권면을 위하여

우리는 그러한 아버지의 자녀들로서 처신하자.

(1) 우리는 우리의 모든 곤경과 위급의 때에 아버지께 의지하자. 우리는 그가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자. 만일 우리가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을 신뢰할진대 생계에 대해서는 우리는 그를 신뢰하지 않을 것인가?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그리시나니”(12:24)라고 하였다.

(2)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시라면 우리는 그를 본받자. 자녀는 그의 아버지의 형상을 지니고 있을뿐 아니라 그의 언어, 몸짓 그리고 행동을 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5:1)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그의 아버지로 모신 사람은 그를 본보기로 삼아 모신다.

(3)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우리는 끈기있게 그의 뜻에 굴복하자. 만일 그가 우리에게 타격을 가하시더라도 그것들은 징계이지 재판관의 형벌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18:11)라고 하였다. 그는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자 이것을 규정음료처럼 지정하신다(27:9). 그러므로 논쟁하지 말고 굴복하라.

(4)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그 사실로 하여금 우리 속에 자녀다운 공경심을 일으키게 하라.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1:6)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숭상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존귀의 일부분이다.

(5)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우리는 순종함으로 행하자.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벧전1:14)이라고 하였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우리의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아니할 때 하나님의 자녀들처럼 행동하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시하게 된다.

(6)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우리는 우리의 즐거운 모습에 의하여 우리가 그러하신 아버지의 자녀들임을 보여주자. 지나치게 수그러지는 것과 의기저하 하는 것은 우리가 그와 맺고 있는 관계를 깔보게 한다. 상속자는 소망중에 즐거워하지 않은가? 왕의 아들이 풀이 죽어서 다니겠는가? “왕자여 어찌하여 나날이 파리하여 가느뇨”(삼하13:4)라고 하였다.

(7)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우리는 대단히 거룩하게 행함으로서 그를 존귀케 하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1:16)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높으신 하나님의 양자된 아들 딸들임을 기억하고 그런 인척 관계에 합당치 않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 거룩한 생활에 의하여 당신은 당신의 하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며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야 한다.

(8)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우리는 그의 자녀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133:1)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름다운 향기는 유향에 비교되고 있다. “형제를 사랑하며”(벧전2:17)라고 하였다. 영혼의 운동은 형상과 그 실재를 향해 동일하다.

(9)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우리는 천국의 마음가짐을 보여주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은 그들의 애착을 위에 있는 사물들에게 둔다(3:2). 아아 너희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너희의 고귀한 가문을 지저분한 탐욕에 의해 더럽히지 말라.

(10)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우리는 최악의 때에 그를 아버지로 시인하자. 그를 위해 일어서서 그의 진리를 옹호하자. 아타나시우스는 온 세상이 아리안주의로 기울어졌을 때 하나님을 시인하였다.

 

. 서문의 둘째 부분은 하늘에 계신이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것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수 있나?

(1) 우리는 기도로 우리 마음을 땅보다 높이 일으켜야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더불어 상의할 만한 곳이 하늘 이외에는 아무 데도 없다. 그는 소송을 청구하려고 하늘에까지 나아간 그 영혼에게 그것을 결코 거절하지 않으셨다.

(2) 우리는 그의 주권적 권능을 배운다. 다음의 말씀에 의해 우리는 만물이 그의 통치 하에 있음을 알게 된다(칼빈).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115:3)라고 하였다.

(3) 우리는 그의 영광과 위엄을 배운다. 그는 하늘에 계신다. 그러므로 그는 빛으로 싸이셨다(104:2). 그는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104:1)라고 하였다.

(4) 우리는 그의 전지하심을 배운다. 모든 사물이 그의 눈에게는 벌거벗었고 정체가 폭로되어 있다(4:13).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높은 탑이나 극장에 있을 때처럼 인간들의 모든 행동을 보신다.

(5)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위로를 배운다.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기도드릴 때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은 가로막힐수 없다. 하나님의 성도는 그대가 그대의 아버지께 기도할 때 그는 하늘에 계시다. 그리고 비록 그대는 그토록 갇혀 있다 하더라도 그에게 접근할수 있다.

 

. 다음은 우리라고 하는 대명사에 관하여 말하고자 한다.

아버지라는 호칭의 귀속이 있다. “우리 아버지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라는 단어에 의해 이토록 많은 것을 가르치고자 하셨다. ,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모든 기도에서 우리는 믿음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공경심을 나타내고, 우리 아버지는 믿음을 나타낸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모든 기도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행사하여야 한다. “너희가 기도할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21:22)고 하였다.

 

믿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함축하는가?

믿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며, 그리고 행동은 습관을 함축한다.

믿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약속이 없는 곳에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할수 없다.

(2) 그리스도의 공로있는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14:13)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공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다.

(3) 이것은 기도에서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의 성실성에 고정시키고 그가 들으시며 도우실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다(64:7). 기도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며, 믿음에 의해 우리는 그를 붙잡는다. “여호와께 부르짖고라고 하였으며 그리고 이것은 믿음의 부르짖음이었다(대하13:14).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영혼을 하나님께 머물러 있게 하는 것 이것이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믿음으로 기도하고 있는 줄 우리는 어떻게 알수 있는가?

(1) 기도 가운데 믿음이 겸손할때이다. 건방진 사람은 자기 자신속에 있는 어떤 고유한 진가로 인하여 들으심을 받기를 바란다. 그러나 진실한 마음은 기도 가운데 믿음뿐만 아니라 겸손을 나타낸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여기에는 겸손과 부족감이 있었다(18:13).

(2)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는 줄 알수 있는 것은, 비록 우리가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바 그것은 얻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실 줄 믿고 때를 기다리기를 기꺼워 할때이다. 베드로가 문을 두드렸을 때 문이 안열렸지만 마침내 문이 열릴때까지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던 것과 같다.(12:16). 이와같이 그리스도인도 기도하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 그는 응답이 올줄 알고 천국문을 계속 두드리는 것이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86:7)라고 하였다.

 

적용 1

형식에 매어 기도하고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을 책망함. 그들은 혹시 하나님이 들으실는지 또는 허락하실는지 의문시하는 자들이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4:3)고 하였다.

 

적용 2: 권면을 위하여

우리는 믿음이 기도 가운데 역사하게 하자. 농부는 소망을 가지고 씨를 뿌린다. 기도는 우리가 뿌리는 씨이며, 그래서 믿음의 손이 이씨를 흩뿌리면 이것은 축복의 풍작을 산출한다.

(1)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기를 기뻐하심(칼빈). 하나님이 그에게 향한 모든 청원을 허락지 않으신다면 이것은 기도의 고통에 낙담을 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귀는 기도를 향해 열려 있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65:2)이다.

(2) 우리가 기도 가운데 믿음을 행사하기 위하여 우리는 혼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님을 고려하자.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도를 다시 한번 기도하신다. 그는 성도들의 기도에 그의 아름다운 향기를 혼합시킨다(5:8). 우리의 기도는 중보자의 손을 거친다.

(3) 우리는 하나님께 그를 기쁘시게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을 위해서나 기도하지 않으며, 그리고 그는 허락하실 마음이 있으시다.

(4) 기도 가운데의 믿음을 북돋우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기도에 대하여 맺어 놓으신 많은 아름다운 약속들을 고려하자. 하나님은 그의 약속에 의하여 자기 자신을 매어 놓으셨다. “그가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30:19)라고 하였다.

(5) 우리가 기도에서 믿음을 행사하기 위하여는 에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위하여 기도하는 바를 값주고 사셨다는 것을 고려하라. 우리는 우리의 구하는 것들이 너무 과분해서 얻어내기 어렵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들을 그리스도께서 값주고 사시기에 너무 과분하지는 않다.

(6) 믿음으로 기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는 너무나 후하심이 많으셔서 그는 종종 그의 백성의 기도보다 초과하신다는 것을 고려하라.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시기를 기도하였는데 하나님은 그의 순례자의 지팡이에 두떼를 더 늘려 주셨다(32:10)

(7) 믿음의 기도가 발견해낸 대성공, 요나단의 화살처럼 이것은 헛되이 돌아온 적이 없다. 마음속으로 말해진 아버지라는 작은 단어라고 루터는 말한다. 믿음으로 발음된 아버지라는 작은 단어가 하나님을 이겼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32;11)라고 하였다.

(8) 만일 이 모든 것이 효과가 없다면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각박하고 위로 없는가를 생각하라! 닻을 걸수 없는 곳에 슬픈 항해가 있고 그리고 닻을 걸 약속이 없는 곳에 슬픈 기도가 있다(1:7).

 

그러나 너무나 많은 죄가 나의 기도에 굳게 붙어 있기 때문에 나는 이것이 믿음의 기도가 아닐까,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니 들으실까 두려워 한다.

 

만일 그대가 이것을 한탄한다 하더라도 그대의 기도가 믿음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방해가 되지 않으며,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을 들으실 것이다. 연약함은 성도들의 기도를 무효케 할 것이 아니다. “내가 경겁한 중에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31:22)라고 하였다. 이 기도에는 불신앙이 들어 있다. 다윗의 믿음은 떨렸고 약해졌었으나 그래도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 성도들의 정욕은 그들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는다(5:17).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아라. 그대는 비록 약하기는 하지만 믿음으로 기도할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은 성실성을 보시고 연약함을 관대히 보아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께 간청하라. 우리는 성령에 의하지 않고서는 우리 아버지라고 말할수 없다.

 

 

 

 

 

 


출처 : 지명교회까페
글쓴이 : 아침그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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